이란의 ‘미사일 보복’으로 중동 지역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하는 한국으로서는 해상수송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라는 최악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비축유 2억 배럴이라는 카드를 쥐고 있다. 2억 배럴이면 6개월을 버틸 수 있다. 한국의 ‘원유 골든타임’이 6개월인 셈이다. 또 정부는 중동산 원유를 대신할 수입선 확보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미국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다.
정부는 8일 온종일 긴박하게 움직였다.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오전과 오후에 위기평가회의, 석유·가스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잇달아 열었다. 산업부는 “아직 중동 지역에서 들어오는 원유·액화천연가스(LNG) 운송에 차질이 없지만,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도 ‘중동 리스크’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홍 부총리는 최근 중동 정세와 관련해 “단순히 금융시장뿐 아니라 국제유가, 수출 등 실물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며 “정부는 이미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했다. 적기에 작동시키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을 총괄반장으로 한 ‘중동관련 관계부처 합동대응반’을 구성하고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가 거론한 컨틴전시 플랜은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으로 주요 원유 수입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는 단계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너비 50㎞에 불과한 호르무즈해협은 이란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 사이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서 생산된 원유가 한국으로 가는 길목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한국에 수입되는 원유 가운데 28.4%(물량 기준)는 사우디아라바이산(産)이다. 쿠웨이트(14.0%), 이라크(10.6%), UAE(7.7%), 카타르(5.6%), 이란(3.7%) 등 중동 국가 수입비율을 모두 합치면 70%를 조금 넘는다. 공교롭게도 이 원유들은 모두 호르무즈해협을 거쳐 한국으로 온다.
호르무즈해협 외에 예멘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바브알만다브해협을 활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일부를 들여올 수도 있다. 다만 사용빈도가 낮고 해적 출몰이 잦다는 부담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우디아라비아 내 원유 파이프라인이 호르무즈해협 쪽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우회 수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중동산 원유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단기적으로 비축유를 순차 방출할 계획이다. 현재 정부와 민간 정유사들이 저장해둔 비축유의 규모는 2억 배럴가량이다. 원유 수입이 끊겨도 6개월가량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부는 대체수입선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수급 구멍’을 메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장 유력한 대체수입국은 미국이다. 한국에 수입되는 원유 가운데 미국산의 비중은 12.7%다. 사우다아라비아, 쿠웨이트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셰일오일의 생산 증가에 힘입어 미국은 지난해 석유 순수출국 자리에 올랐다. 197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 외에 카자흐스탄, 멕시코도 거론된다. 두 나라는 모두 중동 정세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원유 수출국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원유 가운데 카자흐스탄 비중은 5.8%, 멕시코는 4.3%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