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레이마니 죽음으로 ‘초승달 벨트’ 장악력 복구하는 이란

입력 2020-01-08 16:16 수정 2020-01-08 17:33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이란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의 죽음이 이라크 등 초승달 벨트(중동 시아파 진영) 국가들에서의 이란의 장악력을 복구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해 초승달 벨트 국가들을 휩쓴 반(反)이란 시위에 과거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란이 솔레이마니 폭살 사태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는 주장이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7일(현지시간) 솔레이마니가 미군의 공습으로 숨지면서 ‘이라크 땅에서 이란의 영향력 유지’라는 그의 필생의 꿈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명령하기 전까지 이라크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며 이란의 영향력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친(親)이란 세력이 대거 결집하며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의회의 쿠르드계 의원인 사르쾃 샴스는 지난 5일 솔레이마니 폭살 사태 직후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인 카타이브 헤즈볼라(KH) 측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위협적이었다. 미국인들을 내쫓으려 하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반역자로 간주돼 집이 불타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실렸다. 6일 이라크 의회서 표결에 붙여질 미군 철수 결의안에 대해 찬성 표를 던져달라는 압박이었다. FP는 “솔레이마니의 죽음은 이라크 내부 친이란 정치 엘리트들을 결집시키고 있다”며 “반(反)이란 움직임들을 친미주의자로 억압하는 민족주의적 언어들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라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 초승달 벨트 국가들 내부에서는 지난해 맹주 이란의 내정 간섭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2018년 5월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한 뒤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의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되자 이란의 지원을 받는 초승달 벨트 국가들의 경제 사정도 어려워졌다. 국민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지만 솔레이마니의 지원을 받으며 권력을 유지하는 부패한 친이란 집권 세력은 개혁을 막고 있다는 불만이 폭발하면서 반이란 시위가 격화됐다. 이란의 장악력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솔레이마니의 죽음으로 여론은 반전됐다. 각국의 친이란 세력들은 적극적으로 반미 감정을 부추기며 반정부 시위대를 친미 반역자로 낙인찍고 있다.

FP는 “솔레이마니 폭살 사건은 이라크 등지의 인기 없는 시아파 지도자들이 그토록 절실히 바랐던 명분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라크에서는 반미 시위가 거세지면서 반정부 시위는 동력을 잃은 채 약화되고 있다.

이란 집권층도 대미 공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위험에 빠졌다고 경고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안보가 중동 지역에서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과 결코 이 중대 범죄의 결과를 모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솔레이마니 장군을 암살함으로써 중대한 전략적 실책을 범했다. 응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