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김사부, 왜 인기 있을까

입력 2020-01-08 15:05 수정 2020-01-08 16:35
SBS 제공


김사부가 돌아왔다. 3년 만에 복귀한 이 천재 의사는 여전히 소신에 차 있고 열정적이며, 낭만적이었다. 시청자들은 벌써 그에게 깊숙이 빠져들었다. 단 2회 만에 시청률 18%(닐슨코리아)로 화제 몰이 중인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SBS·이하 김사부) 얘기다. 이 소소한 의학 드라마가 이토록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은 강원도 정선의 허름한 병원인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한 의사들의 성장기다. 안효섭 이성경 등 배우의 호연이 두루 돋보이는 극이지만 최고는 역시 한석규다. 그는 극의 무게 중심을 단단히 잡은 채 이야기를 종횡무진 오가면서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27%가 넘는 시청률로 사랑받았던 시즌1의 유산을 이어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전작에서 김사부(한석규)의 제자였던 동주(유연석)와 서정(서현진) 대신 시즌2에는 우진(안효섭)과 은재(이성경)이 나온다. 캐릭터 설정과 서사가 이전과 매우 흡사한데, 뛰어난 2년차 펠로우 우진은 가난 탓에 ‘각자도생’이란 신념으로 사는 인물이고, 은재는 노력형 천재이나 실전엔 젬병인 캐릭터다. 의사로서 ‘결핍’을 가진 이 인물들은 전작처럼 “사람을 살리는 것만 생각하는” 사부와 만나 동고동락하며 성장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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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데이먼과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 ‘굿 윌 헌팅’(1997)을 얼핏 떠오르게 하는 이 작품은 잘 알려졌다시피 ‘제빵왕 김탁구’(2010)를 집필한 강은경 작가가 썼다. 미니시리즈로는 파격적인 8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금세 지나가지만, 구성만 보면 진부한 게 사실이다. 흥미로운 요소들을 한 데 버무린 듯한 느낌이 적지 않다. 가령 메디컬드라마인데 굳이 우진-은재의 로맨스를 살짝 묻히는 것에서 일종의 강박이 드러난다. 서슬 퍼런 권력투쟁을 그리는 오피스물이기도 하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다양한 장르 코드들이 얽혀 있다”며 “선과 악으로 나뉘는 인물의 전형성 등 때문에 자칫 판에 박힌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디테일을 살려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단점에도 극이 열화와 같은 응원을 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탁월함이 있어서다. 김사부의 방점은 ‘닥터’가 아니라 ‘낭만’에 찍혀있다. 김사부는 ‘하얀거탑’(2007) 류의 의학 드라마가 추구해왔던 리얼리티 대신 인간적 가치들에 집중한다. 벙거지를 쓴 사부와 초라한 돌담병원은 신념 정의 생명 등 현실에서 시장 논리에 밀려난, “낭만적”이라고 폄하된 것들의 은유다. 반면 거대병원 원장에서 재단 이사장으로 돌아온 사부의 적수 윤완(최진호)은 돈과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인데, 그는 눈엣가시인 돌담병원 응급외상센터를 잠식하기 위해 사사건건 사부를 괴롭힐 것이다. 자신의 페르소나 박민국(김주헌) 교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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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극의 근저에 깔린 건 삶에 위계를 나누는 시장 논리(윤완-거대병원)와 생명은 모두 평등하고 소중하다는 논리(사부 우진 은재-돌담병원) 사이의 경쟁이다. 생과 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의사만큼 이런 이야기에 어울리는 소재가 있었을까. 극이 시청자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우여곡절 끝에 사부의 손을 들어줄 드라마는 우진과 은재라는 새내기 의사들의 성장 서사와 함께 진한 카타르시스를 전할 것이다.

결말이 얼마간 짐작이 가능하다는 건 극의 가장 큰 약점이다. 지난 시즌에서는 일부 에피소드가 개연성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에 위로받고픈 시청자들의 마음에 힘입어 시청률은 무난히 오름세를 탈 듯하다. 최근 누적된 적자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방송사들이 저마다 월화드라마를 중단하는 호재도 겹쳤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