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복수’ 외치면서도 “전쟁은 원치 않는다” 밝힌 이란

입력 2020-01-08 14:39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탄도미사일로 공격한 것은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보복을 명분으로 미국에 초강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를 공격한 이란은 미 본토와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까지 타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이 반격에 나설 경우 현재 갈등을 국제적 규모의 분쟁으로 확전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이번 미사일 공격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에 따른 정당한 자위 조치였으며 더 이상의 상황 악화는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함께 내놨다.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에 보복해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미국과의 전면전은 피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 셈이다. 반정부 시위로 한때 위기를 맞았던 이란 정권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을 민심 안정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이번 일을 벌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8일(현지시간) 텔레그램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의 공격에 대응하겠다는 미 국방부 발표를 언급하며 “우리는 다음에는 미국 내에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본토를 겨냥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혁명수비대는 또 “이란 영토가 폭격당하면 UAE 두바이와 이스라엘 하이파를 겨냥한 3차 공격에 들어가겠다”고도 밝혔다.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미사일 전력을 갖춘 나라로 평가된다. 미 국방정보국(DIA)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란이 자국 국경에서 약 2000㎞ 떨어진 곳까지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DIA는 “이란 정권이 중동 지역 내 친이란 무장조직에 미사일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란은 자국 미사일 전력의 위력과 신뢰성, 정밀도를 지속적으로 향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실제로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각오가 돼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혁명수비대가 공언한대로 공격을 실시할 경우 이란은 미국은 물론 전 중동 국가를 적으로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이 미국과의 관계보다는 국내정치적 측면을 고려해 이번 공격을 벌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내부에서는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이후 반미 정서가 고조된 상황이다. 지난해 말부터 경제난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골머리를 앓던 이란 정권으로서는 국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릴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일란 골드버그 신미국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인터넷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란 국내에서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해 조국을 수호한 사람으로 인기가 높았다”며 “권위주의 정권으로서는 현재 국민적 추모 분위기를 자신들을 향한 지지로 돌려놓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버그 연구원은 “국민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뭔가 행동을 취해야 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이란은 미사일 공격과 더불어 다소 유화적인 메시지를 함께 발신했다. 이란 정권 대변인격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트위터에 “이란은 유엔 헌장 51조에 따라 비례적인 방어 조치를 취했다”며 “이번에 표적으로 삼은 미군 기지는 우리 국민과 고위 관리를 겨냥한 비겁한 공격이 비롯됐던 곳이었다”고 주장했다. 자리프 장관은 “우리는 사태 악화 또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모든 침략에 대응해 우리 자신을 방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