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가 살해한 초등학생 사건을 경찰이 조작·은폐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사촌언니와 피해 아동 아버지의 진술조서에 이들이 하지 않은 말을 경찰이 꾸며내 적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경찰 조사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7일 MBC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의 사촌언니 임모(당시 12살)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지만 그의 서명이 있는 진술 조서가 존재했다. 조서에는 임씨가 김양 실종 6개월 뒤인 1990년 1월 12일 경기 화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장이 찍혀있고 자필 서명이 돼 있다.
임씨는 “당시 경찰서에 간 적 없다”며 “12살 아이가 혼자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엄마도 간 적 없다고 하더라”라고 부인했다. 자신이 다니던 경기 포천의 한 초등학교에 경찰이 두 차례 찾아온 적은 있다고 했다. 조사를 받지 않았지만 그가 답한 것으로 기록된 조작된 조서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김양의 아버지도 조서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경찰이 실종된 아이의 시신을 발견해 놓고도 자신들이 찾고 있는 김양이 범죄 대상자가 아닌 것처럼 만들기 위해 조서 내용을 조작한 것 같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특히 ‘줄넘기’와 ‘아폴로 과자봉지’에 집중했다. 이후에 드러난 사실에 비춰봈을 때 김양의 유류품에서 발견된 물건들로 추측된다. 김양의 아버지의 조서는 1989년 12월 25일 작성된 것으로 표시돼 있다. 김양의 시신은 같은 달 21일 발견됐다. 조서에는 경찰이 “김양이 아폴로 과자를 잘 먹느냐”고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초코크림맛’이라고 특정하는가 하면 “사고 당일 김양이 아폴로 과자를 갖고 있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답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추후 은폐 사실이 문제가 됐을 때 유류품 관련 내용을 조사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조작했다는 것이다.
줄넘기도 마찬가지다. 이춘재는 살해 당시 김양의 가방에서 줄넘기 줄을 꺼내 결박했다고 진술했다. 유류품에서 줄넘기가 발견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김양 아버지의 조서에 따르면 경찰은 “학교 준비물로 줄넘기를 가지고 갔느냐”고 물었고 그는 “갖고 가지 않아 집에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은 줄넘기를 항상 갖고 다녔다”며 “줄넘기 관련 질문을 받은 적도, 답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사촌언니 임씨도 비슷한 질문을 받고 답했다고 적혀있다. “동생의 줄넘기를 본 적이 있느냐” “모양과 색을 말해달라”고 경찰이 물어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씨는 “줄넘기에 대한 질문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 기록은 이상했다. 1989년 12월 25일 작성된 조서에 따르면 김양의 아버지가 화성경찰서에서 진술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서명과 도장까지 곳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같은 날 작성된 또 다른 수사 보고서에는 성탄절에 화성을 떠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던 아버지 김씨의 연립주택에 직접 찾아가 면접조사를 했다고 적혀있다. 서류가 사실이라면 김양의 아버지는 같은 날 서로 다른 곳에서 두 번이나 조사를 받았다는 뜻이 된다. 아버지는 그날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다. 조서에 찍힌 도장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 문서는 경찰서장에게도 보고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당시 수사 경찰이 진술조서에 줄넘기나 과자 봉지 등을 지속적으로 언급한 건 실제 사체를 발견하고 은폐한 증거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