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안무가 류모(49)씨가 저지른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 8일 오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연학)는 8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506호에서 현대무용 안무가 류씨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혐의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각계의 미투 열풍에도 침묵을 지켰던 무용계에서 최초로 공동행동을 구성해 반년에 걸쳐 피해자 연대 활동을 이끌어낸 상징적인 사건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5월 14일 류씨가 2015년 4~5월경 자신이 지도한 20대 초반 여성 무용 전공생을 네 차례에 걸쳐 성추행했다며 성폭력특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류씨가 26살 어린 제자인 피해자에게 신체 추행 등을 했고 강제로 탈의하거나 강압으로 성관계까지 시도했다고 봤다.
사건은 2015년 일어났다. 류씨는 유명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유명 무용단 대표인 남성 무용수다. 그는 개인 강습을 받는 학생 A씨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범행은 개인 연습실에서 단둘이 있는 시간에 주로 벌어졌다. 수위는 갈수록 심해졌다. 처음엔 강제추행이었다가 나중에는 옷을 벗기고 성관계를 시도했다고 했다. 류씨는 2001년 현대무용진흥회의 최고무용가상, 2013년 한국춤비평가상 작품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현대무용협회 및 현대무용진흥회 이사를 지내는 등 무용계 내 권위자다.
A씨는 의지하던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 사실은 곧 류씨의 귀에 들어갔다. A씨는 죽을 힘을 다해 류씨를 피했다. 신고는 꿈도 못 꿨다. 얽히고설킨 인맥 탓이다. 당시 A씨는 서울 소재 한 대학 실용무용예술학부 학생이었는데, 학부장이 류씨의 아내인 이모씨였다. A씨에게 류씨를 소개해준 사람도 그의 아내다. 이들 부부는 현대무용계 각종 협회·조직, 콩쿨, 대학 등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진 권위자다. 신고를 하는 순간 A씨는 평생 무용을 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4년을 숨어 지냈다. A씨는 이후 복학을 하고도 자신의 학교에 출강하던 류씨를 피해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A씨는 2017년 여름 그의 아내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이씨는 “니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다. 다 잊으라”고 했다. 이후 A씨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무용을 포기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대인기피 증상을 보여 치료를 받고 있다.
류씨는 반성하지 않고 있다. 일방적인 추행이 아닌 합의된 관계였다며 재판 내내 무죄를 주장했다.
이게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위드유’의 시작이었다. 그를 위해 무려 1000여 명이 연대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무용계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활동이다. 한국 무용 역사상 최초의 반(反) 성폭력 연대 #위드유는 류씨의 성폭력 사건 이후 실명을 내 걸고 연대하기 시작했다. 무용계에 만연해온 성폭력 사건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시작한 것이다. #위드유는 지난해 7월 17일, 8월 28일, 10월 16일, 11월 12일, 11월 28일 등 총 5회에 걸쳐 진행된 공판에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방청단을 모집해 ‘방청연대’를 진행했다. 재판 내용에 따라 즉각적인 연대 활동을 펼쳐왔다.
#위드유는 사건이 보도된 직후인 6월 14일 ‘우리가 참담한 이유’를 담은 첫 성명서를 냈다. 3차 공판 직전인 10월 14일에는 재판부의 이해를 위해 무용계의 현실을 담은 263명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4차 공판 전인 11월 26일부터 5차 공판 후인 12월 11일까지 6인의 탄원서와 669인의 연서명을 등재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스승에 대한 동경으로 왜곡하지 말라’는 제목의 연대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1000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이 탄원서로 연대의 뜻을 밝혔다.
#위드유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졌으나 소송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던 무용계 성폭력 사건의 선례로 남아 무용계의 권력형 성폭력을 바라보는 기준이 제시되리라는 점에서 이번 재판이 갖는 의미는 엄중하다”며 “선고 기일에도 방청 연대를 진행하고 판결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자가 오랜 시간 고통을 받고 2차 가해를 감수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으려면, 성폭력은 결코 농담이나 장난·실수가 아닌 ‘범죄’라는 상식이 자리 잡을 수 있으려면 관심이 절실하다”라고 당부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