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레이마니 폭살’ 여진에 흔들리는 美행정부…또 난맥상 노출

입력 2020-01-07 17:30
미국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왼쪽)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미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국방부 수뇌부가 6일(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이라크의 주권적 결정을 존중해 병력을 이동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이라크군에 보낸 것에 대해 “철수는 없다”며 부인했다. 미국 정부가 이라크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원칙없이 흔들리는 ‘트럼프 시대’ 군의 낙맥상이 또 노출된 것이다. 이번 작전이 충분한 숙고 끝에 나온 결정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발단은 미군 이라크 태스크포스(TF)의 책임자인 윌리엄 실리 해병대 여단장이 이라크 연합작전사령부 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이었다. 실리 여단장 명의의 서한에는 “이라크 의회와 총리의 요청에 따라 통합합동기동부대(CJTF-OIR)는 다가오는 수일이나 수주 동안 병력을 재배치할 것”이라고 내용이 담겼다. 이라크 의회는 5일 긴급회의를 열어 시아파 출신 의원들의 주도 하에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AFP통신은 실리 여단장 서한을 인용해 “이라크 의회가 자국 정부에 외국군 철수를 요구한 지 하루만에 미국이 이라크 내 병력 철수를 이라크 연합작전사령부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슬람국가(IS) 대응을 위한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이 이라크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었다.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워싱턴의 펜타곤(미 국방부)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국방부 수뇌부가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 철수 요구시 이라크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달리 현지 미 사령관은 이라크 의회의 요구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군의 이라크 철수를 놓고 온종일 혼선이 이어지자 결국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오후 늦게 브리핑을 자청했다. 그는 “우리는 이라크를 떠난다는 어떤 결정도 내린 적이 없다”며 “미국은 여전히 동맹국들과 함께 이라크 내 IS 대응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석한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해 중앙아시아·인도양 일대를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에 책임을 돌렸다. 그는 “서한은 초안이었고 실수로 보내진 것”이라며 “프랭크 매켄지 중부사령관의 실수다. 그 서한은 보내져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미 CNN은 트럼프 행정부가 ‘솔레이마니 제거’가 불러온 후폭풍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솔레이마니 제거로 미국인들이 보다 안전해졌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이란과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미국이 더 고립되고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호전적 트윗들을 제외하면 이란의 보복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뚜렷한 전략을 지니고 있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이번 공격이 중동 정세에 초래할 결과를 얼마나 주의 깊게 검토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3년간 IS에 대항하는 군사적 노력의 거점이자 이란을 면밀히 감시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했던 이라크가 갑작스럽게 미국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라크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WP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라크에 대해 어떤 정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