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표적 사살로 중동 위기가 극에 달하면서, 유엔 무대에서도 이를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졌다. G2인 미국과 중국은 사태 책임 등에 대한 신경전을 벌였다. 미국은 이란 외무장관의 미국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하며 사실상 안보리 연설을 차단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불거진 중동 위기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가 이번 세기 들어 최고 수준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AFP·로이터통신 등은 6일(현지시간) 미국 유엔대표부가 성명에서 “외교공관의 불가침 원칙을 강조하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본적인 성명조차 러시아와 중국이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시위대의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습격을 비판하며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27개 유엔 회원국은 대사관 피습 사건 규탄 성명에 동참하고 있다”며 “안보리 상임이사국 2곳,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안보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덧붙였다. 안보리 성명은 결의안처럼 법적 구속력을 갖진 못하지만 국제사회의 단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메시지다.
미국은 또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의 미국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유엔 안보리 연설을 사실상 차단한 셈이다. 포린폴리시(FP), 로이터 등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최근 자리프 장관의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자리프 장관은 이미 몇주전 유엔 안보리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입국 비자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지난 3일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대 정예군 사령관을 사살하면서 이에 대한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미 행정부 당국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화해 자리프 장관 입국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이 같은 조치는 1947년 유엔본부 합의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본부 합의는 유엔 업무를 위한 외국 당국자의 입국을 허용하고, 미국 연방·주정부 등이 유엔 구성원 및 언론 등의 이동을 막지 못하도록 한다. 미국 측이 “안보, 테러 및 외교 정책을 이유로 비자를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 국무부도 논평을 거부했다.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무력사용을 비판했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들에게 “중국은 국제관계에서 무력 사용에 반대한다”며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군사 행동이 국제 기본 규범을 위반하고 (중동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대사는 유엔 주재 이란 대표부가 안보리 이사국들에 ‘현재 상황에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란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다. 장 대사는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다른 이사국들과 협력해 국제법과 정의를 지키고 긴장 악화를 피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새해가 혼란으로 시작됐다”며 “지정학적 긴장감이 이번 세기 들어서 최고 수위”라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그는 “많은 국가들이 예측 불가능한 결정을 내리면서 중대한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당사국들의 대화를 촉구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