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극에 치닫자, 중동 내 미국의 동맹국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이란과 갈등을 빚어온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은 미국의 이란 군부 실세 제거를 내심 반기면서도, 보복을 우려해 최대한 침묵하는 모습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미국이 가셈 솔레아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한 뒤 중동 내 미국 동맹들의 가장 큰 반응은 침묵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들은 수년간 이란의 적대행위와 무장단체 지원을 비판해왔지만, 이란의 보복이 두려워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NYT는 이 같은 ‘양가감정’이 두 가지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이란의 반격이 미국의 동맹국을 향할 것이라는 우려, 미국이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동맹을 지킬 것인지 불투명하다는 우려다.
실제 미국과 이란이 전면전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은 적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악몽이 여전하다. 이란은 경제난으로 불과 몇달 전부터 반정부 시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나 전쟁이 부담스러운 데다, 상대가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다. 이 때문에 동맹을 통한 ‘대리전’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의 중동 동맹들은 보복 피해자가 되지 않기 미국의 공습결정과 거리를 두고, 심지어 이란에 손을 내밀기도 한다고 NYT는 전했다. 타우피크 라힘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중동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며 “무엇이든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음에 닥칠 일을 대비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동맹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미지수다. 앞서 지난해 9월 사우디 최대 정유시설이 예멘 반군에 의해 피폭된 적이 있다. NYT는 당시 미국은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며 비난했지만 군사적 대응은 포기했다며 이는 ‘걸프유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의 힘을 사용하겠다’는 수십년간의 약속과는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보호주의 경향도 동맹국이 미국의 보호를 기대하기도 어렵게 한다.
바버라 리프 전 아랍에미리트(UAE) 주재 대사는 “걸프국가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군사행동이든 사이버공격이든 이란이 보복할 경우 동맹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어느 정도까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느냐 여부”라며 “(중동) 지도자들은 미국의 다음 계획이 뭔지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특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동 우방국이고 이란과 지리적으로도 가까운데다 경제력과 방대한 석유 및 상업적 기반시설은 표적이 되기 쉬운 탓이다. 사우디 왕세자의 친동생이자 국방차관인 칼리드 빈 살만 왕자는 지난 주말 미국 관계자들과 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NYT는 이스라엘마저도 “눈에 띄게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솔레이마니는 지난 25년간 유대인 등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지속해온 대표적인 ‘적’이었다. 실제 이란은 이날 미국의 재보복 시 이스라엘 주요 도시들을 표적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모흐센 레자에이 이란 전 혁명수비대장이 이날 트위터에 “미국이 이란의 군사적 대응에 반격에 나선다면 이스라엘의 하이파와 텔아비브는 가루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방송 연설에서 미국의 공습을 평가하며 미국의 동맹으로서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이스라엘과 솔레이마니 간 악연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솔레이마니)는 최근 수십년간 많은 미국인과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했다”고만 말했다.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이란 보복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솔레이마니 사살 사건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하길 꺼려하고 있다.
미국이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은 이라크도 미국의 공습을 비판했고, 이란보다 미국을 더 선호하는 쿠르드족과 수니파조차 시아파와 강력한 민병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