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레이마니 사망에 ‘레드라인’ 밟은 이란… “핵개발 재개”

입력 2020-01-06 14:23 수정 2020-01-06 14:38
이란 정부 “JCPOA 의무 이행 전면 중단”
JCPOA 체결 4년 반 만에 파기 위기
美, 이란 핵시설 공습·사이버 공격 가능성
영국·프랑스·독일 “이란, JCPOA 복귀하라”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살해에 격분한 이란이 핵개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란 정부는 2015년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규정한 의무사항 이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적 탈퇴로 위기를 맞은 JCPOA가 4년 만에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개발을 막기 위해 핵시설 폭격이나 사이버 공격 등 직접 행동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이란은 JCPOA 이행 중단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며 “이란은 농축우라늄 생산능력과 농축도, 핵물질 생산량, 연구개발 등에서 모든 의무사항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JCPOA의 마지막 핵심 의무사항인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보유한도를 철폐할 것”이라며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으며 오직 기술적 필요에만 따른다”고 강조했다.

JCPOA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도 상한선을 3.67%로 규정한 바 있다.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5월 JCPOA에서 탈퇴하자 이에 대응해 우라늄 농축 농도를 조금씩 높여왔다. 이란은 지난해 11월 전력 생산용 연료봉으로서는 상한선에 해당하는 5% 농도까지 상향하겠다고 밝혔는데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군 공습에 살해되면서 이마저도 없앴다. 농축도가 20%를 넘는 고농축 우라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어 이란이 ‘레드라인’을 밟은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JCPOA가 ‘최악의 거래’라고 비난하며 더 나은 핵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란이 마지막 남은 JCPOA의 의무사항마저 준수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이란 핵문제는 악화일로로 치닫게 됐다. 재임 시절 대(對)이란 초강경 정책을 주도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트위터에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에 이어) 좋은 날이 또 왔다”며 “이란이 드디어 가면을 벗어던졌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를 해제하면 JCPOA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함께 강조했다. 이란 정부는 “이란은 전과 같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며 “제재가 해제되고 핵합의에 따른 이익을 다시 얻을 수 있다면 JCPOA 준수로 되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이번 조치도 JCPOA의 틀 안에 있다”며 “상호 의무사항의 실질적 이행만 이뤄진다면 되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이 JCPOA 복귀를 언급한 것은 자신들의 행동이 합법적인 틀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사태 악화의 책임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이란 측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다. 도리어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개발을 막으려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 파괴를 위해 군사적 행동이나 사이버 전쟁을 벌여야할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JCPOA의 유럽 당사국인 독일, 프랑스, 영국은 이란에 핵합의 복귀를 촉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전화통화 후 “핵합의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치를 철회할 것을 이란에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