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거머쥔 ‘기생충’ 할리우드 중심서 한국을 외치다

입력 2020-01-06 13:30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봉준호(51) 감독의 수상 소감에, 객석에 자리한 마틴 스코세이지·로버트 드니로 등 미국 영화계 거장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언어와 지역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짧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였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 감독이 할리우드의 중심에서 또 한 번의 역사를 썼다. 한국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봉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은 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더 페어웰’(감독 룰루 왕·미국 중국) ‘레미제라블’(래드 리·프랑스) ‘페인 앤 글로리’(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셀린 시아마·프랑스) 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친 결과였다.

시상대에 오른 봉 감독은 “와우. 어메이징. 언빌리버블”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통역사를 대동한 그는 한국말로 소감을 얘기하기에 앞서 “나는 외국어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 통역이 함께 왔다”고 재치 있게 양해를 구했다. 봉 감독은 “전 세계 멋진 감독들과 함께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영광”이라며 “우리가 쓰는 단 하나의 언어는 영화”라고 말했다.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가운데)과 배우 송강호(오른쪽) 이정은. 연합뉴스

이로써 ‘기생충’은 아카데미 수상에도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 향방에 적잖은 영향을 미쳐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린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다음 달 9일 열리는데, ‘기생충’은 국제극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과 주제가상 예비후보에 올라있다. 아직 후보가 발표되지 않은 감독상과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될 가능성도 높다.

앞서 ‘기생충’은 각종 북미 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펼친 데 이어 4일 전미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특히 작품상은 44표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작은 아씨들’(그레타 거윅·27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22표) 등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호주 아카데미 시상식(AACTA)에서도 작품상을 품에 안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칸 황금종려상 수상은 예술성 면에서 인정받은 것이라면 골든글로브는 상업영화로서의 가치를 평가받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영화 산업적으로는 한국 영화인들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시장에 나가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봉 감독뿐 아니라 한국영화 자체에 대한 할리우드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역시 “그동안 훌륭한 한국영화들이 해외 시장을 꾸준히 공략해왔음에도 텃새가 심한 북미권 시상식에서는 저평가된 측면이 큰데, ‘기생충’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해외 수출 및 배급 등 산업적으로도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평론가는 이어 “개봉 당시 봉 감독은 ‘기생충’이 가장 한국적인 영화라고 언급했는데 역설적으로 명실공이 가장 세계적인 영화가 됐다”면서 “자본주의가 조장한 계층 간, 계층 내 갈등이라는 ‘기생충’의 주제의식과 여러 장르를 혼합시킨 봉 감독만의 신선한 블랙코미디, 유머감각이 전 세계적 공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올해의 영화로 인정받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