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당해 자백” 무기수 또 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기로

입력 2020-01-06 05:20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2명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가 6일 결정된다.

부산고법은 최인철(58)씨, 장동익(61)씨가 강도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이날 오후 301호 법정에서 연다. 이들은 “경찰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씨와 장씨는 강도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21년을 복역했다. 2013년 모범수로 출소한 뒤 무죄를 호소하며 2017년 한 차례 재심을 청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대검 과거사위원회 발표로 다시 기회를 얻었다. 과거사위는 28년 만에 이 사건에 대해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1991년 사하경찰서 경찰관에게 물고문과 폭행을 당해 혐의를 거짓으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피해 당사자들은 과거사위 발표 후 재심 요청 의견서를 다시 법원에 제출했다. 부산고법은 이를 받아들여 제1형사부에서 재심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 심문을 6차례 열었다.

이날 열리는 재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이 나올 경우 재판부는 이른 시일 안에 공판 준비기일을 열고 양측 입증계획을 청취한다. 재심에 필요한 증거와 증인을 확정하는 등 재판을 신속히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30년 전 부산 낙동강변 엄궁동에서는

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변 엄궁동 555번지 갈대숲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인근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여성 직원 박모씨였다. 사건 현장과 시신 상태로 봤을 때 그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분명해보였다. 목격자는 “범인은 2명”이라며 “1명은 키가 컸고 1명은 키가 작았다”고 증언했다.

현장에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어떤 단서도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낙동강 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여러 사건의 범인이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봤다. 그 무렵 악명 높았던 이른바 ‘엄궁동 2인조’다. 하지만 검거는 쉽지 않았고 경찰은 미제사건으로 처리했다.

1년 10개월 후인 1991년 11월, 느닷없이 용의자가 검거됐다. 2명이었는데 1명은 키가 컸고 1명은 키가 작았다. 다른 사건에 휘말려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이들은 낙동강 주변에서 자신들을 경찰이라고 속이며 돈을 갈취하고 다녔던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이들을 ‘엄궁동 2인조’라고 확신했다.

진술은 일관성이 없었고 조서는 어딘가 수상했다.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듯 보였다. 조사가 10여 차례가 넘게 진행됐지만 진술은 계속해 바뀌었다. 어느 시점이 지나니 매끄러운 조서가 완성됐다.

결론은 이랬다. 2인조 중 체격이 큰 최씨가 각목으로 피해자를 때렸고, 키가 작은 장씨가 돌로 여인을 내리찍어 죽였다. 이들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항소와 상고를 거쳤지만 대법원 판결은 변함없었다. 이후 꼬박 21년을 복역했다.

당시 이들의 무죄를 확신하고 백방으로 뛰던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는 이들은 범인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문 대통령은 “장씨는 시력이 아주 나빴다. 범행 장소는 완전 돌밭이었다. 달도 없는 캄캄한 그런 밤에, 쫓고 쫓기는 식의 범행은 일반인도 힘들 텐데 시각장애인이 했을 리 만무하다”며 “(이들은 범인이 아니라고) 나름의 확신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살인범이 된 과정은 이랬다. 먼저 자백을 한 사람은 최씨다. 그는 장씨의 시력장애를 알고 있었지만 공범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최씨에 따르면 경찰은 죄를 인정하면 가혹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회유했고 결국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장씨 역시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자신을 거꾸로 매달아 얼굴에 물을 부었다고 주장했다. 직접증거가 하나도 없는 사건에서 자백만으로 유죄를 받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겪었던 수많은 사건 중 가장 한이 되는 사건”이라고 회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