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밝혀지는 곤의 탈출극… 일본 사법당국은 갈수록 곤혹

입력 2020-01-05 17:19 수정 2020-01-05 17:31
카를로스 곤 전 닛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 지난해 31일 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에 도차한 후 아내 캐럴 등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 프랑스 민영 TF1 캡처

카를로스 곤 전 닛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일본 탈출 미스테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일본 정부는 5일 곤 전 회장을 비판하며 출입국 검사 강화를 예고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곤 전 회장은 8일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한 상태다. 이때 탈출 경위와 방법 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곤 전 회장이 지난달 29일 혼자 도쿄 자택을 빠져나온 것이 밝혀졌다. 곤 전 회장은 이후 오카사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자가용비행기로 출국, 터키를 거쳐 레바논으로 갔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민간보안업계 요원들이 곤 전 회장을 음향장비 하드케이스 2개 중 하나에 숨겨 공항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이 케이스에는 호흡용 구멍도 뚫려 있고, 이동하기 쉽도록 바퀴도 달려있었다고 한다.

NHK는 비행기에 반입된 수하물이 간사이공항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개인용 비행기의 경우 운항 회사나 기장의 판단에 따라 종종 수하물 검사가 생략된다고 한다. WSJ는 곤 전 회장의 일본 탈출을 도움 민간보안업체 요원들로 미군 특수부대 출신의 마이클 테일러와 조지 안투안 자이예크를 꼽았다. 테일러는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로드 구출에 참여한 인물이며, 자이예크는 테일러 소유의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의 터키 경유 사실이 알려진 이후 4명의 조종사와 화물회사 관리자와 2명의 공항 노동자를 비롯한 7명이 관련 혐의로 터키 사법당국에 체포됐다. 이어 터키의 전세기 회사 MNG제트는 비행기 2대를 임의로 사용해 곤 전 회장의 탈출을 도운 직원을 형사 고발했다고 밝혔다. NHK는 “체포된 MNG제트 간부가 협력하지 않으면 부인과 자녀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는 협박을 당해 협력했다”고 진술했다고 터키 언론을 인용해 전했다.

한편 그동안 곤 전 회장의 탈출에 대해 침묵만 지키던 일본 정부가 이날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모리 마사코 법무상은 “회사 공금 횡령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극비리에 일본을 탈출한 곤 전 회장의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곤 전 회장에 대한 보석 결정이 취소됐으며 인터폴이 곤 전 회장에 대한 수배영장을 발부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도쿄 지검도 “곤 전 회장의 국외 도피는 일본의 사법 절차를 일부러 무시하는 범죄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사법당국이 곤 전 회장을 일본에 데려올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일본과 레바논이 범죄인 인도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바논 정부는 그동안 곤 전 회장의 억류 장기화 우려를 표명하는 등 옹호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도쿄 지검은 이날 “일본은 모든 피고에게 법정에서 신속하고 공평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곤 전 회장이 앞서 ‘불공정한 일본 법정’이 아닌 장외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무죄를 밝혀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을 의식한 내용이다. 하지만 일본 검찰의 1심 유죄율이 99%, 피의자들의 자백 비율이 85%를 넘는다는 통계가 보여주듯 일본 검찰의 장기구금 수사에 따른 인질사법 관행은 일본 안팎에서 이미 비판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 곤 전 회장이 그동안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를 폭로할 경우 일본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질 전망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