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도 잘하는 선수인데…루트한테 미안해요”

입력 2020-01-04 00:55 수정 2020-01-04 00:58

‘고릴라’ 강범현은 베테랑 서포터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2019 LoL KeSPA컵’ 준결승전 시작 직전, 샌드박스 게이밍 부스에서는 새 팀에서의 첫 경기를 앞둔 ‘페이트’ 유수혁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범현은 대회 경기장이 일(一)자형 오픈 부스인 게 프릭업 스튜디오와 닮아있다며 유수혁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많이 떨리니? 경기장이 챌린저스랑 비슷하지 않아?”

그제야 굳어있던 유수혁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프릭업 스튜디오는 그가 2년 넘게 ‘LoL 챌린저스 코리아(챌린저스)’ 경기를 치러 익숙한 곳이다. 강범현의 말이 유수혁의 긴장을 녹여서 그랬을까. 그는 ‘난적’ T1 상대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1, 2세트 모두 키아나를 플레이 한 유수혁은 적재적소에 궁극기를 활용해 팀에 2승을 안겼다.

샌드박스 게이밍은 3일 울산 남구 KBS 홀에서 열린 2019 LoL KeSPA컵 준결승전에서 T1을 세트스코어 3대 1로 제압, 창단 첫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들은 편한 마음으로 4일 열리는 아프리카 프릭스 대 드래곤X(DRX)전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해당 경기의 승자와는 5일 우승컵을 놓고 대결한다.

T1전을 마친 후 국민일보와 만난 강범현은 3세트 패배를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이날 샌드박스는 세트스코어 2대 0으로 리드하던 상황에서 ‘레오’ 한겨레와 유수혁을 대기실로 불러들였다. 대신 ‘루트’ 문검수와 ‘도브’ 김재연을 투입했다. 그러나 초반부터 상대방의 페이스에 휘말려 대패했다. 결국 4세트 시작 전 다시 한겨레가 원거리 딜러 부스에 앉았다.

“(문)검수도 잘하는 선수인데…. 검수가 나온 경기를 져서 미안해요.”

샌드박스가 유일하게 진 3세트는 문검수의 샌드박스 데뷔전이기도 했다. 강범현은 자신을 책망했다. “KeSPA컵은 중요한 무대”라고 운을 뗀 그는 “선수들이 이런 큰 무대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다. (코치진이) 다양한 선수들에게 경험을 심어줬으면 해 교체 투입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3세트 결과가 좋지 못했다. 저도 실수를 많이 했다. 검수도 잘하는 선수인데 그 경기를 져 검수에게 미안하다”며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간 늘 팀의 살림꾼을 자처해왔던 강범현이다. 이번 겨울 새롭게 샌드박스에 합류한 그는 차기 시즌 자신의 역할을 ‘조력자’로 정했다. 강범현은 “저는 이 팀에 온지 얼마 안 됐지만, 고참급이다. 오늘은 한겨례나 유수혁이 흔들리지 않게끔 게임 내 조력자 역할을 하고자 했다”면서 “오늘은 제 플레이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 역할은 잘 수행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9인의 정규 멤버와 탑라이너 연습생 1명으로 꾸린 샌드박스의 로스터가 몹시 두텁다고 자부했다. 강범현은 “이번 대회를 위해 5대5 내부 스크림을 치른 결과 ‘트릭’같은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며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 누가 당장 출전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들 기량이 좋다. 오늘 출전 멤버를 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자신했다.

울산=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