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고조되는 ‘톱다운’ 회의론… “아무 것도 못 바꿨다”

입력 2020-01-03 13:1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 대북 협상법에 대한 회의론이 고조되고 있다. 북·미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마주앉은 후 19개월이 지나도록 핵무기 폐기와 제재 해제를 둘러싼 이견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충격적인 실제 행동’을 언급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2017년 위기 상황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정책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김 위원장과의 친분 관계를 내세우며 톱다운 방식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직접 대화는 사실상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북한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핵개발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최고위급을 통해 내보냈다”며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음이 결정적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세상은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전략무기’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미 외교성과를 자신의 치적이라고 홍보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가 악화될 경우, 정세 주도권은 김 위원장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여전히 대북 대화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최근 메시지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인내심을 잃고 있는 징후로 해석하고 있다. 수전 디마지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는 것은 노력 낭비로 간주할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톱다운 외교가 위기를 맞은 건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의 이견이 전혀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회담 등 사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곧바로 싱가포르로 날아가 김 위원장과 마주앉았다.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지만 이후 아무런 진전도 내지 못한 채 교착 국면이 이어져왔다. 익명의 민주당 소속 외교정책 보좌관은 WP에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에 대해 완전히 잘못 읽었다”면서 “(반면) 북한이 비핵화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정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미 대화가 이뤄졌던) 2018~19년이 특별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시기는 거대한 전환점이었다기보다는 일시적 상황 변화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은 전략적 목표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상충한다”며 “제아무리 편지를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고 정상회담을 열어도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