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고객을 기다리는 ‘천수답 경영’은 옛말이다. 주요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새해를 맞아 ‘인수·합병(M&A)’을 내세운 출사표를 던졌다.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서 ‘위험 분산’ ‘몸집 불리기’로 맷집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동남아시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글로벌 경영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대신 지난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홍역을 치른 은행권은 ‘고객 우선’ ‘착한 은행’을 내세우면서 몸을 한껏 낮췄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2일 신년사를 통해 “사업영역 확장을 통해 그룹 포트폴리오 완성도를 제고하고 신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다양한 M&A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되,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KB금융그룹은 ‘신남방 벨트’의 중심축인 동남아시아에서 활발하게 M&A를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6일 캄보디아 최대 소액대출 금융회사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지분 70%를 700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11월 KB국민카드sms 인도네시아 여신금융전문회사 ‘PT 파이낸시아 멀티 파이낸스’와 주식매매계약(SPA)를 맺고 지분 80%를 95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지주회사 체제 2년차를 맞은 우리금융그룹도 M&A를 통한 ‘포트폴리오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금융은 상대적으로 은행 비중이 높아 비은행 부문 키우기가 숙제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올해는 캐피탈이나 저축은행 등의 중소형 M&A 뿐만 아니라 증권, 보험 등 그룹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 확대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올해 아주캐피탈과 아주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할 계획이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올해 경영 키워드로 ‘신뢰’ ‘개방성’ ‘혁신’을 꼽았다. 조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주도해가는 주체가 되기 위해선 금융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금융·비금융을 아우르는 M&A와 융·복합형 인재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리셋(Reset)’을 지목했다. 김 회장은 “신남방 지역의 은행계좌가 없거나 대출이 어려운 소외계층을 품을 수 있는 글로벌 포용 금융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그룹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한다. 은행의 이자이익에 치우쳐 있는 수익 포트폴리오를 은행과 비은행간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한편 주요 은행장 신년사엔 ‘고객 서비스’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DLF 사태 여파에 따른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다. 허인 KB국민은행장은 성과 평가기준의 변화를 역설했다. 허 행장은 “고객가치 부문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윤리경영 부문의 평가 비중을 큰 폭으로 올렸다. 고객의 선택이 생존을 좌우하는 패러다임 변화에 발 맞추자”고 했다.
신한은행의 새해 목표도 ‘고객 중심’에 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좋은 서비스로 고객 만족(CS)의 개념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은 “한 번 실추된 고객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고객 정보보호와 내부통제에 항상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재찬 최지웅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