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용 선교사. 15년 기도의 열매!
선교국 : 독일
파송 단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평중노회
파송 교회: 수도중앙교회(장대영 목사)
독일은 작곡을 공부하던 20대 초반에 전공교수님이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공부하셨고 저에게 늘 독일에 가서 공부하라고 권하셨기에 저는 늘 독일에 가서 작곡공부를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음악도에서 신학도로 부르셔서 독일행의 목적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저에겐 독일에서 공부하고 사역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신학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독일 에센 갈보리 한인교회 전도사로 사역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전도사로 사역을 하며 독일현지의 기독교상황을 알게 되었고, 한인교회의 사역적 한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독일에 많이 거주하는 터키인들을 비롯한 무슬림들을 선교할 수 있는 선교적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사정상 2년 반 정도의 독일사역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야 만 했습니다.
2005년 귀국 후 저에게는 늘 다시 독일에 가서 독일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독일인, 외국인, 한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민족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다민족 교회개척을 비전으로 삼고 지금까지 15년 동안 매일 독일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길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998년부터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지 20년이 된 2018년 봄, 한국나이로 47세가 된 저에게는 반드시 결단해야 하는 해라는 강한 마음이 들어 부목사로 7년간 사역하던 교회에서 잠시 안식주간을 얻어 3월에 가족들과 함께 독일에 2주간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평생의 비전이었지만 아내와 아들에게는 남편의, 또 아버지의 비전으로 여겨졌기에,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 속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고 독일로 출국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13년을 독일선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독일을 품고 기도하게 하신분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만일 이번 독일방문에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싸인이 없으면 그동안 수고한 저와 가족들에게 주는 좋은 휴가로 여기고 다녀와서 독일 선교는 접고 계속 국내 사역에 전념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가족들 모두가 공감할 분명한 싸인을 주신다면 조금 늦었지만 저의 남은 인생을, 사역의 후반전은 독일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바치겠습니다.”
출국 후 첫 주일에 지인의 소개로 뒤셀도르프에 있는 독일 현지인 교회인 JESUS-HAUS라는 교회에 방문하여 주일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 첫 방문한 저희를 담임목사님이 기쁘게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독일에서 2년 반 정도 생활했던 시절의 독일어를 떠올려 한국에서 온 목사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독일교회 목사님이 놀라듯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한 달 전부터 한국에서 목사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라고 저희 가족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이 교회를 중심으로 Groweb 이라는 독일 내 교회개척 선교단체가 교회개척선교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 싱가폴에서 선교사님이 오셔서 같이 개척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시길, ‘동양의 기독교라 하면 한국이 떠오르고 한국의 뜨거움과 선교적 열정을 알기에 그럼 한국에서도 선교사님이 오셔서 독일에 교회를 세우고 함께 독일을 선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저와 저희 가족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분명한 음성, 싸인으로 받았고 저 또한 독일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기도하고 있었고 지금 선교지 정탐을 나온 것이라고 말을 하자 ‘언제 나올 수 있느냐? 우리가 함께 교회 개척을 돕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한국에서의 사역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내년에 나오겠다고 약속하고 연락처를 받아 이메일로 계속 연락하기로 하고 일정을 기쁘게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한국에서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아직 많은 교회의 담임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독일, 유럽을 선교지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 종교개혁의 발원지이며 대부분 기독교 국가라 생각하기 때문에 독일에 선교를 나간다고 하면 그냥 독일에서 자녀교육하고 내가 좋아서, 살고 싶어서 나가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선교적 편견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선교후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며 차라리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나가면 후원하겠다고 하시는 목사님들과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아프리카는 열악한 환경에서의 생활이 힘들지만 긍휼함을 가지기에 교회와 성도들의 많은 후원이 따르고, 독일과 유럽은 좋은 환경에서 생활은 편하지만 버틸만한 최소한의 선교비를 모금하는 것 자체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독일과 유럽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독일 기독교학자의 발표에 따르면 8.200만 독일 인구 중 실재 기독교인(최소한 한 달에 한번이라도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의 비율이 2% 미만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건설노동자로 들어오기 시작한 터키인들을 비롯한 중동인들(무슬림)의 비율은 점점 높아져서 무슬림의 비율이 10%를 넘었다는 발표입니다.
이는 2003년부터 독일에서 사역할 때 느꼈던 수치와 비슷하며, 무슬림의 비율은 훨씬 더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미 사탄은 이슬람화 정책으로 유럽을 택했고, 이미 수많은 유럽의 국가들이 영국을 비롯해서 이슬람화 되어가고 교회는 비어가고 교회는 술집이나 이슬람 사원, 이단 사이비 종교에 팔리는 안타까운 현실에 봉착해 있습니다.
또한 신천지가 2018년에 400명 가까이 수료식을 했고, 2019년엔 더 많은 인원이 수료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슬람과 신천지 같은 각종 이단을 사탄은 이용하여 유럽을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교계가 새롭게 보아야 할 선교지이며 또한 선교의 기회의 땅입니다.
그만큼 많은 무슬림들이 있기에 이슬람권 선교사역의 좋은 기회의 땅이며, 최근 중국의 기독교탄압정책으로 거의 모든 중국내 선교사님들이 추방당해서 재배치 할 곳을 찾는데 독일에 아시아인중 가장 많은 국가가 역시 중국입니다.
올 5월에 비자수속을 위해 출국해서 11월 말까지 머물며 많은 무슬림 친구들을 사귀었고 중국인 친구들도 사귀었습니다. 그중에 몇 명은 전도하여 교회에 출석하기도 합니다.
저의 경험으로 분명 선교지이며, 선교의 기회의 땅이기도 합니다.
짧지만 5월부터 11월 말까지 비자와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선교사 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자를 받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했으며 기다리는 과정에서 선교사 비자에 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어서 참으로 답답하며 막막한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주변의 한인 목사님들은 대부분 유학생 비자이거나 한인교회 소속의 취업비자로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러다 보니 선교사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할 때 어느 누구에게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그런 비자를 받아 사역하는 한인목사를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특별하게 독일현지 선교단체의 초청으로 그들과 일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목사님들과는 다른 독특한 경우였습니다.
독일선교단체에서 선교사 비자로 진행하자고 자신들이 준비한다고 기다리라고 할 때 독일이 일처리가 느리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느렸고 그 기다림은 저에게 인내와 믿음을 키우는 기회였고, 또한 내 의지와 힘을 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은혜로 2년짜리 선교사 비자를 받았습니다.
처음 비자발급해주는 독일관청의 직원조차도 선교사 비자가 있느냐?며 저에게 묻고 한참을 나가서 다른 동료들과 의논한 뒤 들어와서 가능한 것 같다고 발급해보자고 했었으니 참 어려운 과정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집을 구하는 과정이 남았는데 이는 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현재 독일은 난민들의 유입과 해외이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주택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 같은 외국인들이 집을 구하는 것은 하늘이 별따기가 되었고 또한 독일의 세입자 보호정책(집 주인은 임의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다.
계약서상 계약기간도 명시되지 않음)으로 인해 더욱 집주인들은 까다롭게, 재정과 문화 및 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자국민들 위주로 집을 내어주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 하나님께서 독일의 부동산 중계업자(현지 교회 교인) 친구를 붙여 주셨으나 중계업자가 나선다고 해도 집주인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독일에 작은 가정교회를 섬기게 되었고 그 과정에 알게 된 독일 친구가 저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습니다.
‘너 아직 집을 못 구했어? 진짜 어렵지? 독일인들도 요즘 집구하기 힘들어.’ 그러면서 자기도 좀 알아보고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힘듦을 알게 되었고 결국 그의 선택은 저를 위해 본인이 직접 집을 사서 나에게 세를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감사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믿음과 우정에 뭐라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 ‘ 나는 부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가장 부자이시니 아버지가 허락하시면 나는 너를 위해 집을 살 수 있으니 함께 기도하고 진행해보자’ 였습니다.
가족도, 정말 수십 년 우정을 나눈 친구도 하기 힘든 일을 몇 번 만나지 않은 외국인 친구를 위해 자신도 은행에 대출을 해야 집을 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그런 결정을 해준 친구는 세상 어디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위로하고 돕기 위해 보내신 천사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아서 대출신청이 들어간 사이 집은 팔리고 이렇게 두 집이 팔려가면서 시간은 11월 중순이 다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12월 말까지 현재 한국에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그전에 사역하던 교회 사택을 비워줘야 했기에 들어와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나 가족들을 위한 집을 구하지는 못하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친구에게 집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12월 3일 오전 비행기를 티켓팅 하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돕는 자를 붙여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집을 구할 수 없는거죠?’ 라고 계속 묻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교회를 세울 도시를 정확히 정해라’
지금까지는 선교회가 속한 뒤셀도르프라는 대도시에 집을 구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를 통해 교회를 세우실 지역에 집을 예비하셨음을 깨닫게 하셨고 뒤늦게 저에게 허락하실 도시를 놓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조건은 1. 한인교회가 없는 도시 2. 한인이 거의 없는 도시 3. 작은 도시. 이렇게 마음을 주셔서 기도하며 찾기 시작했는데 정말 뒤셀도르프 주변에 딱 한 도시가 조건에 맞았습니다. 바로 뮬하임 이라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래서 그 도시에 제가 인터넷으로 집을 찾고 40통 정도의 메일을 보내서 집을 얻고 싶으니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답장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답장이 오기 시작하고 결국 11월 31일 토요일에 두 집을 볼 수 있는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두 집다 집주인이 직접 나와서 설명해 주었고 아주 친절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대기자들이 있어서 집주인은 저에게 집을 계약할 차례가 오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12월 1일 주일 예배 후 독일부동산중계인인 친구에게 사진으로 집을 보여주고 설명했더니 당장 문자해서 내일 계약하고 싶으니 꼭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기회는 사라진다고..
그래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곧바로 한 주인이 연락이 와서 네 직업이 무엇이냐? 지금 어디 있느냐? 묻기 시작하더니 내가 목사이고, 현재 뒤셀도르프에서 예배 마쳤다고 하자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바로 오겠다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30분 뒤 집주인은 집 월세계약서를 들고 왔으며 사실 월요일에 계약하기로 한 사람이 있지만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자기는 목사가 우리 집에 살기를 원한다고 하여 약속을 깨고 달려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고 자신도 현재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3주 전에 이집을 샀고 내가 그의 첫 세입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위해 그를 통해 그 집을 사게 하시고 저에게 집을 내어준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게 몇 달 동안 노력해도 안 되었고, 돕는 친구들이 도와주어도 안 되던 집 계약이 불과 이틀 만에 진행되어 저는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독일 선교를 위해 나를 부르셨고 예비하셨음을 확신하며 한국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게 되는 이유는 아직 한국교계에서 선교지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 시대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선교정책등으로 인해 소외되고 있는 유럽선교의 필요서와 방향성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의 지역은 우리보다 못살고 그래서 물자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모이게 되고 복음을 전할 기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현재 동남아시아의 경우 몇몇 국가들은 선교사님들이 너무 많아서 안타깝지만 서로 영역다툼을 할 정도라고 하니요..
유럽, 독일의 경우 집세 및 기본 체류비가 많이 듭니다.
그리고 난민들을 주 타겟으로 하지 않는 한 물자를 제공한다고 이성과 합리주의로 가득찬 독일인들을 전도한다는 것, 그리고 무슬림들을 전도한다는 것은 힘듧니다.
그들은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식사 초대를 하고 식사를 나누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역시 선교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ㅎㅎ
정말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거의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선교의 대상자들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핍박도 없이 자유롭게 친구가 되고 자유롭게 복음을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는 땅, 그 땅에는 선교해야 할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다 모여 있는 땅, 그들을 전도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민족을 품고 기도하모 그 땅을 섬길 수 있도록 한다면 선교의 선순환이 반드시 유럽 땅에서 일어나고 다시 유럽에 영적종교개혁이 일어나 재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고 부족하지만 저의 남은 삶을 그 땅에 바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