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직원에 ‘직무정지 6개월’ 징계 내린 농협

입력 2020-01-02 15:52 수정 2020-01-02 18:19

비리 혐의로 내부 감사를 받다가 사망한 직원에게 징계를 내린 농협중앙회의 결정이 망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침해한 것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일 “재직 중 사망한 직원에 대해 징계를 의결하고 이를 유가족에게 통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명예권을 부당하게 침해한다”며 “관련 업무 매뉴얼을 개선하라”고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권고했다. 특별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론권이 없는 사망자를 퇴직자와 동일한 방법으로 징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인권위에 따르면 농협중앙회 조합장이었던 A씨는 지난해 업무추진비 및 경조사비 등을 부당하게 집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와 내부 감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조합감사위원회는 하지만 직원 조사 등을 계속 진행해 A씨의 비위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농협 이사회는 A씨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직무정지 6개월과 2300만원의 변상금 요구 등 결정을 내렸다. A씨의 징계처분통보서는 지난 5월 유족들에게 전달됐다.

A씨의 가족들은 “피해자가 사망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농협이 징계를 의결해 망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농협은 내부 준칙에 따라 사망자를 퇴직자에 준하여 조치했다는 입장이다. 농협 측은 “손해배상 등의 문제가 있어 피해자가 사망했어도 감사·징계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농협은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자체 조사를 실시할 필요성이 있었다”면서도 “유가족에게 변상액을 고지하는 민사 절차로 충분했는데 징계 절차까지 진행한 것은 불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또 “망자는 기관의 의사결정에 불복할 수 없으며 평판도 돌이킬 수 없게 떨어진다”며 “불필요한 징계로 헌법이 보장하는 명예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망과 퇴직을 분리해 규정하는 근로기준법 등에 비추어 봤을 때 사망자를 퇴직자와 동일하게 징계 의결한 농협의 결정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