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능은 2015년 설 특집 파일럿으로 선보이자마자 큰 화제를 모으며 곧장 정규 편성됐다. 직관적인 얼개가 눈을 사로잡았다. 가면을 쓴 스타들이 노래를 부르고 패널들이 이들의 정체를 맞추는 식이었다. 기민한 독자라면 진즉 눈치챘을 이 프로그램은 ‘복면가왕’(MBC). 어엿한 장수 예능으로 발돋움한 복면가왕은 주말 전통 강호 ‘1박2일’(KBS2)의 복귀에도 여전히 8~9%(닐슨코리아)의 높은 시청률로 선전 중이다.
이 프로그램이 예사롭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전 세계에 포맷을 수출하며 콘텐츠 한류를 이끄는 선봉장이어서다. 미국 독일 영국을 비롯해 중동 지역까지 50여개국에 현지판 복면가왕이 소개됐거나, 소개될 예정이다. 지난 1일에는 포르투갈 버전 복면가왕이 현지에서 첫 전파를 탔다. 미국이 교두보가 돼 유럽권과 중동에까지 진출한 것인데, ‘대장금’ 등 드라마를 제외하면 국내 콘텐츠가 이처럼 많은 국가에 수출된 사례는 드물다.
복면가왕의 흥행 이유로는 스포츠 선수부터 코미디언까지를 아우르는 여러 스타의 걸출한 노래 실력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제작진도 그만큼 캐스팅에 각고의 노력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도 할리우드 인기 영화 ‘데드풀’의 라이언 레이놀즈를 출연시키는 등 남다른 섭외력을 뽐냈다. 무엇보다 복면가왕은 수동적 감상에 그치는 여타 예능과는 달리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가면 속 정체를 알아맞히는 ‘추리’의 묘미가 대단해서다.
방송 관계자들이 복면가왕의 수출 요인으로 꼽는 것도 바로 이런 강점들이다. 콘텐츠 판매 등을 총괄하는 박현호 MBC 콘텐츠사업국장은 “음악은 만인이 공감하는 코드로 원래 수출 가능성이 크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효했다”며 “해외 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음악적 진정성에 더해 복면가왕 포맷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었다. 복면가왕은 에이전시 도움 없이 미국에 직접 수출된 첫 사례다. ‘아메리카 갓 탤런트’ 등을 히트시킨 유명 제작자 크레이그 플레스티스 스마트독미디어 대표는 태국 식당에서 현지 복면가왕을 보고 매료돼 MBC를 찾았다. 한편의 수사물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어서였다. 이후 미국 폭스 채널에서 ‘더 마스크드 싱어’란 이름으로 지난해 초 방송된 복면가왕은 1400만명 이상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며 현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최근 시즌2가 마무리됐는데, 오는 2월 시즌3는 전 세계 1억명가량이 시청하는 미국프로풋볼(NFL) 수퍼볼 경기 직후에 편성될 예정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플레스티스 대표는 시즌 1, 2의 연이은 흥행에 무척 고무돼 있다고 한다. 전 시즌보다 더 많은 셀럽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 출연진 코스튬도 한층 스케일을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판 복면가왕은 피부색, 체형 등을 가리기 위해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는데, 일부 의상은 한 벌당 1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음악이란 내용에 추리라는 형식을 살짝 가미한 발상의 전환이 세계적 흥행을 견인한 것이다. 변주가 쉽다는 점도 한몫했다. 박 국장은 “복면가왕은 특히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고수하지 않아 나라 문화에 발맞춰 변화해나간다”며 “가령 화려한 퍼포먼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무대를 키우고 부수적인 것들은 줄인다. 그래서 태국 미국 독일 포르투갈 각 나라의 복면가왕이 다른 것”이라고 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엠넷) ‘더 팬’(SBS) 등 한국 음악 예능의 포맷 수출은 갈수록 활기를 띠어가는 추세다. 예능 프로그램의 수출가는 지역과 콘텐츠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영미권으로 치면 한 회당 많게는 3~4만 달러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같은 콘텐츠 수출로 국내 콘텐츠에 대한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K팝 등 한국문화와 국내 연예인들의 한층 활발한 해외 진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