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학습 부진 치료할 수 있다

입력 2020-01-02 11:48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 아이 J는 3월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한글을 읽고 쓰지를 못한다. 아무리 가르쳐도 다음날이 되면 백지 상태가 되는 거다. 입학이 코 앞 인데 부모는 너무 불안하여 다그치며 공부를 시키다 보니, 시간이 갈수로 위축되어 갔다. 산만한 편도 아니라 한자리에 꽤 오랜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편인데도 공부가 안되니 안쓰럽기도 했다.

한글 수업도 4살 경부터 시작해서 줄곧 시켰고, 요즘에는 주 5회씩 학습지 교사가 외서 가르치고 엄마도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고 입학 준비를 시켰는데도 차도가 없자 조급해 져서 병원을 찾았다. 엄마는 아이가 지능이 떨어지는 듯도 하다고 했다. 어떤 말을 해도 이해를 못할 때가 많고 같이 앉아서 영화를 보고도 이해를 잘하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하고도 했다.

J와 놀이를 해보니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림은 또래 보다 오히려 잘 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는 중에는 멍 때리면서 한 곳을 응시하기도 하고, 딴 생각에 빠지는 둣한 모습을 보였다. 검사를 해보니 역시 지능은 평균 정도에 속하지만 집중력이 몹시 떨어지는 상태였다. J는 한두달 치료하고는 몇 해를 학습하고도 되지 않던 한글을 읽고, 쓰기까지 잘하고 독서도 즐기게 되었다. 학습지 선생님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깜짝 놀랐다. J와 같이 집중력의 문제로 학습 부진이 온 아이들은 진단만 정확히 되고 치료를 하면 급속히 좋아진다.

하지만 지능이 정상인데도 학습이 안 되는 아이들의 일부는 선천적인 학습장애(learningdiorder)도 있는데 이는 뇌기능 상의 장애를 말하는 것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개선이 어려운 질병이다.

또 다른 아이 P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로 역시 학과 공부가 부진해 병원을 찾았다. 3세부터 한글을 배웠다고 하는데 매우 더디었고, 혹독한 연습 끝에 읽기는 어느 정도 하지만 속도가 느렸다. 쓰기는 '아가' '나비' 등 단순한 철자를 알고 있지만, 받침만 들어가도 전혀 쓰지 못했다. 학년이 올라가도 띄어쓰기를 못하고 구두점을 제대로 찍지 못해 받아쓰기는 거의 0점을 받았었다. 특수반에 가라는 권유까지 받았다.

P는 검사를 거쳐 학습장애로 진단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글이 세종대왕께서 아주 논리적인 법칙을 가지고 창제하신 글이기 때문에 규칙성이 강해 철자나 음소에 대한 논리적인 훈련을 거치고 읽기, 쓰기가 어느 정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다음엔 이것이 자동화 될 수 있도록 반복 훈련을 하면 유창하게 속도를 내서 읽을 수 있게 된다. 단, 너무 늦게 진단이 되어 초등학교 3학년 이후가 되면 학습의 부진에서 벗어나기가 일반적으로 쉽지 않다.

학습장애로 진단된 아이들은 학습에 대한 치료를 하면서도 동시에 강점을 찾아주고 강조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학습 능력이 학교에서 절대적인 평가의 잣대인 환경에서는 특히 그렇다. P의 경우는 만들기, 종이 접기 등 창의력이 우수편이라 이를 십분 활용하여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이 강조하여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하면서 친구들이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 갔다.

또 한글 습득이 완전해 지기 전에는 대안을 찾는다. 예를 들어 교사와 상의해 과제물을 제출할 때 글로 쓰는 대신 말로 녹음해 제출한다든지 하는 식이다.(진단과 동시에 교사에게 고지하고 선생님이 양해해 주신다는 전제이기는 하다) 다른 선진국에서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이런 노력은 모두 부모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이해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 하더라도 주눅이 들어 장점까지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