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모(42)씨는 1일 거래처 사장으로부터 새해 인사가 담긴 모바일 메시지를 받았다. 최씨가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일상적인 덕담에 답장을 하려고 보니 메시지 아래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반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씨는 “일로 얽힌 사람한테 자신의 정치 성향을 왜 드러내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계속 볼 사이인데 답장을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동조하는 것 같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도모(33)씨도 전날 밤 회사 상임고문으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는데 아직 답을 못했다. 입사 이후 3년간 한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이 고문은 뜬금없이 ‘검찰 개혁이 완수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진을 보내왔다. 도씨는 “단체로 보낸 문자겠지만 아랫사람인 나로서는 정치 성향을 테스트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최씨나 도씨처럼 새해 인사를 가장해 정치색이 짙은 문자를 보내는 데 당혹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한 해 한국 사회를 갈라놓은 이른바 ‘조국 사태’부터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수처 설치 법안이 단골 소재다. 이런 문자는 대개 회사 상사나 친척어른 등 윗사람들이 보내기 때문에 적정 수준에서 답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고민이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신년 인사를 계기삼아 북콘서트나 선거사무소 개소식 같은 홍보 메시지를 대놓고 발송하는 일도 잦다.
직장인 김모(37)씨는 “연말연시 나도 모르게 단체 대화방에 초대된 것만 10번이 넘는다”며 “누가 먼저 나가나 서로 눈치보다 하나둘 빠지면 그냥 나와버린다”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
반면 오는 3월 퇴직하는 안모(60)씨는 이런 문자를 보내는 것에 대해 “새해 인사만 하기에는 너무 밋밋하지 않냐”며 “사람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이슈를 언급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정치 과잉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지지받으면서 연대감·소속감을 느끼려는 무의식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격변기라 불러도 될 만큼 유독 정치 갈등이 심했고 그로 인한 시민들의 분노와 불안도 컸다”며 “정치적 이슈가 터지면 편향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때 주변에서 호응해주면 안심이 되는 일종의 확증편향”이라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