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기술 영역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세계가전전시회(CES)가 새해 행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기조 연설자로 선정해 여성 기술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박람회인 CES에 이방카가 기조 연설자로 나서는 것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는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는 세계 가전업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권위 있는 행사다. 전자·정보통신 기술 영역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이방카가 이 같은 행사에 기조 연설자로 참여하는 일 자체가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모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CES는 그간 전자·정보통신 기술 영역에서의 여성들의 공로와 가전업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지분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CES가 비판을 의식해 기조 연설자로 여성을 선정했지만 해당 인물이 업계와 별 관련이 없는 이방카라는 점 탓에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 셈이다.
미국 CNN 등에서 IT 전문 평론가로 활동하는 레이첼 스클라는 트위터를 통해 “(이방카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끔직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비슷한 경력의 남성들이 CES 연단에 오르는 것에 비해 얼마나 적은 수의 여성이 CES에 기조 연설자로 초청받는 지 수년에 걸쳐 비판해온 입장에서 모욕감을 느낀다”며 “정말로 자격을 갖춘 여성들이 너무나 많다. 부끄럽다”고 말했다.
CES 주최 측은 이방카가 일자리와 미래 등에 대한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CES을 주관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의 최고경영자(CEO) 게리 샤피로는 “이방카가 기조 연설자로 CES 연단에 서는 것을 환영한다”며 “그는 미래의 노동력을 창출하는 데 있어 기술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비전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방카가 백악관에서 여성의 경제적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전자·정보통신 기술 분야에 대한 그의 관여도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기조 연설자들의 면모에 비해 이방카가 연단에 오를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블록체인 분야 여성 역량 강화 단체인 ‘위민 언 더 블록(Women on the Block)’의 창립자 신디 친은 “기조 연설자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좀더 체계적인 CES 연사 선정이 필요하다”며 “기조 연설자의 정치적 배경보다는 실질적으로 해당 분야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전문가인지가 우선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정보통신 기술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방카가 기조 연설자로 선정된 것은 해당 업계에서 지속되고 있는 성 편견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