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의 범행 경위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살하려고 야산에 올라갔는데 한 어린이가 지나가길래 몇 마디 대화하다가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춘재의 진술이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기 위한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춘재는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에 지난해 9월 자신이 저지른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강간 등 성범죄를 자백하면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의 범행 경위를 털어놨다. 이 사건은 1989년 7월 7일 낮 12시30분쯤 화성 태안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인 김모(당시 8세)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사라져 그간 실종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춘재는 김양을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자백 당시 그는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살하려고 야산에 올라갔는데 한 어린이가 지나가길래 몇 마디 대화하다가 일을 저질렀다”며 “목을 매려고 들고 간 줄넘기로 어린이의 양 손목을 묶고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이춘재는 현재 재심 절차가 진행 중인 ‘8차 사건’에 대한 범행 경위도 설명했다. 그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대문이 열려있는 집이 보였다”며 “방문 창호지에 난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남자가 있었으면 그냥 가려고 했지만 여자가 자고 있어서 들어갔다”고 말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을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현재 재심을 진행 중인 윤모(52)씨는 당시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이 범행했다고 자백하면서 윤씨는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는 일부 사건의 범행 경위에 대해서는 입을 열면서도 구체적인 동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은 이춘재가 밝힌 범행 경위 또한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기 위한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프로파일러들을 투입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는 자신의 내면이 드러날 수 있는 ‘성욕’과 같은 단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아 범행 동기와 관련한 특별한 진술은 아직 없다”며 “범행 경위에 대한 부분도 이춘재의 일방적인 진술이어서 이를 통해 범행이 계획적이냐 우발적이냐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최근 이춘재를 추가 입건하는 등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의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14건의 살인사건 중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온 3·4·5·7·9차 사건으로만 입건했다. 하지만 이어진 자백의 구체성 등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DNA가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9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혐의도 인정된다고 보고 추가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언제 끝난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8차 사건의 경우 재심 일정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