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 ‘54년 만에 최저’라는데 왜 체감물가는 높지?

입력 2019-12-31 17:22

2019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0.4%로 1965년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기 악화에 따른 수요 부진에 농·축·수산물, 석유류 가격 하락 같은 공급 요인 영향이 겹쳤다. 그런데 저물가 상황에서도 정작 쌀값, 외식비, 학원비 등 생활에서 체감하기 쉬운 일부 품목의 물가 상승률은 전체 평균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표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2019년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5로 전년 대비 0.4% 상승했다. ‘마이너스’를 찍지는 않았지만,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 공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하다. 2019년을 빼고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아래로 내려가기는 외환위기 후폭풍이 한창이던 1999년(0.8%)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터졌던 2015년(0.7%) 두 번뿐이다. 2019년 한 해 생활물가지수도 전년 대비 0.2% 상승에 그쳤다. 생활물가지수는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1개 품목의 물가 변동추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품목별 물가 동향을 뜯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9년에 쌀값과 빵값은 1년 전보다 각각 8.4%, 4.9% 올랐다. 현미와 찹쌀 가격도 전년 대비 각각 16.6%, 16.1% 상승했다. 이들 품목은 2018년에도 전년 대비 각각 27.1%(쌀값), 16.3%(찹쌀), 14.9%(현미), 6.4%(빵값) 뛰었었다.

외식비와 학원비도 마찬가지다. 외식비는 2018년에 전년 대비 3.0%, 2019년에 전년 대비 1.9% 올랐다. 구내식당 식비도 2018년 3.5%에 이어 2019년 3.0% 상승했다. 고등학생 학원비 역시 2018년 2.2%, 2019년 1.9% 올랐다. 2019년에는 오랫동안 동결됐던 택시요금과 시외버스 요금도 각각 12.4%, 11.2%나 뛰었다.

반면 가계의 주머니사정은 넉넉하지 않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9년 3월 말 기준으로 전국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평균 4729만원으로 1년 전보다 1.2% 늘어나는데 그쳤다. 기록적 저물가 상황에서도 가구 소득 증가분보다 생활 체감 품목들의 물가 상승률이 더 높은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정부는 낮은 물가 상승률의 원인을 농·축·수산물 및 석유류 가격 하락 등 공급 요인에서 찾는다. 실제 육류와 채소, 생선류 등 먹거리 가격을 보여주는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대비 5.1% 떨어졌다. 2018년 공급 부족 등으로 일부 채소류 가격이 폭등했던 것의 기저효과다. 2019년 휘발유 가격도 ℓ당 1471.55원으로 1년 전보다 6.9% 하락했다.

정부의 무상급식, 무상교육, 건강보험 보장 확대 등으로 수요가 억제된 측면도 있다. 학교급식비(-41.2%)와 병원검사료(-9.4%) 등은 크게 떨어졌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지방자치단체별 무상교복이 확대되면서 교복 가격이 대폭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디플레이션 우려는 가라앉지 않는다. 정부는 12월 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0.7% 올랐다는 점을 들어 “디플레이션 우려는 없다”고 강조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악화에 따른 수요 부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물가 부진과 디플레이션 우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