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계속된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은 반도체 업계에 연말 훈풍이 불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 가격의 끝없는 추락으로 활력을 잃은 디스플레이업계는 최근 LCD 가격의 ‘반짝’ 반등이 감지돼 이 효과가 얼마나 이어질지 주목된다. 미·중·일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도 한결 긴장감이 완화됐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이달 32인치 LCD 패널(1366×768) 가격이 지난달보다 3.3% 올랐다고 밝혔다. 올 중순 30달러였으나 31달러로 소폭 반등했다. IHS마킷은 55인치와 65인치 LCD 패널도 내년 1월 상승세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32인치 LCD패널은 원래부터 수요가 많지 않은 패널이다. LCD 가격도 ‘반짝’ 상승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업계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LCD 구조조정이 전반적으로 이뤄진 영향이 있고, 출혈경쟁을 벌여온 중국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인 효과도 있다.
가격 하락세가 멈추면서 이전보다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업계는 밝은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가격하락세가 주춤한 것은 사실이지만 손실이 줄어드는 것이지 수익이 늘어나긴 어렵다”며 “여전히 녹록한 환경은 아니다”고 전했다.
새해 업황 회복이 예상되는 반도체는 연말부터 지표가 나아지고 있다. 하반기 들어 낸드플레시 가격이 회복되고, 지난해 8월(8.19달러)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D램도 최근 가격이 반등했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주 PC 범용 DDR4 8Gb 제품 기준 D램 현물가는 3.03달러로 월초 2.73달러 수준에서 11%가량 상승했다.
D램은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서버·데이터센터의 수요 증가, 3D 게임 보급 확대 등으로 내년 수요가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된다. 디램익스체인지는 “내년 1분기 그래픽 D램 고정거래가격이 전 분기 대비 5% 이상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한국무역협회도 내년 2분기 반도체 수출량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중·일을 둘러싼 국제무역 관계의 불확실성도 연말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추가 관세를 보류하면서 1단계 합의에 이르렀고, 일본도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일부를 완화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대(對)중 수출 비중이 큰 정유, 석유화학 산업 등은 연중 리스크를 떠안아야 했다. 국제정세 긴장감으로 유가변동도 컸다.
올 한해 동안 재계 총수들은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지속해서 언급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9월 “지난 20년간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 맞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대외적 불확실성이 최고조였던 지난 2분기 삼성전자는 실적발표에서 “업황 불확실성이 지속돼 사업의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