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고(故) 임세원 교수 사건이 31일로 정확히 1년이 지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 가중처벌, 보안인력 배치 등의 대응책이 마련됐지만 현장에서 의료진이 느끼는 불안감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임 교수 사망 1주기를 맞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의료인을 상대로 한 폭력이 여전하며 1년간 바뀐 게 없다”고 비판했다. 경찰과 연결된 비상벨 설치를 의무화하고, 1명 이상의 보안인력을 배치하도록 의료법을 개정했지만 100병상 이상의 병원급에만 해당되고 접근성이 높은 동네 의원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진료한다는 것이다.
의협에 따르면 사건 이후 보안인력 배치가 의무화됐다. 사설 경비업체 보안인력은 가해자 진압이 불가능하다. 의료계에선 청원경찰 배치를 재차 요구했지만 정부는 비용부담 등의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보안인력이 적법한 범위 내에서 적절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경찰이 대응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일부 대형병원에선 자체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임 교수가 사망한 서울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호신용 스프레이 300개를 의료진에게 보급하고 외래진료실에 방패막 액자를 비치했다. 평소에는 책상 위에 액자처럼 올려두고 환자가 흉기 등을 휘두르면 방패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하지만 “작정하고 덤비는 환자를 막을 순 없고 의료진이 안전한 환경에 있도록 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의료진의 몸에 부착할 수 있는 카메라(액션캠)를 구입했다. 의료진 폭행이 많이 발생하는 응급의료센터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 폭행 발생 시 증거자료로 활용하려는 목적”이라며 “다른 사람이 찍히는 점에 따른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검토한 뒤 법률적 문제가 없으면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2017년 경찰에 신고된 상해, 폭행, 협박 사건은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경우가 1541건으로 지하철(303건), PC방(409건)보다 많았다. 보건복지부가 의료계와 공동으로 지난 1~3월 의료기관 729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병원급 기준으로 응급의학과 의료진의 62.1%가 폭행 등을 경험했다.
의협이 지난 11월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한 의료진 2034명 중 1455명(71.5%)이 최근 3년간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폭언 또는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외래진료실에서 일어난 일로 의협은 “응급실뿐 아니라 외래진료실까지 의료현장 전반이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