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지연된 KeSPA컵, 현장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입력 2019-12-31 03:28

한화생명e스포츠와 아프리카 프릭스의 ‘2019 LoL KeSPA컵’ 8강 2라운드 경기가 텅 빈 관중석을 앞에 두고 당초 예정보다 4시간 늦게 시작됐다. 대회 경기장인 넥슨 아레나의 음성통화 시스템이 말썽을 부린 게 원인이었다.

한화생명과 아프리카는 31일 자정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넥슨 아레나에서 KeSPA컵 경기를 치렀다. 애초 전날인 30일 오후 8시에 같은 열릴 예정이었던 경기다. 그러나 시작을 앞두고 넥슨 아레나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음성통화 시스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해 개막이 지연됐다.

1시간 가까이 문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대회 주최측은 사설 음성통화 소프트웨어 ‘디스코드’를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람객의 함성, 중계진의 해설소리 등을 제거하는 노이즈 캔슬링 작업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주최측은 재차 자체 음성통화 시스템 사용으로 선회했으나 끝내 오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한국e스포츠협회는 방송 시작 2시간 만인 오후 10시에 경기 파행을 선언했다. 이튿날인 31일 오후 2시에 경기를 치르는 방안이 차선책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협회와 양 팀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로 30일 늦은 시간에 경기를 치르는 데 합의했다. 협회는 이날 넥슨 아레나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티켓값 환불을 약속했다.

아프리카 부스 서포터 자리에서 다른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관계자 20여 명이 좁은 부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컴퓨터와 헤드셋을 예비품으로 바꾸는 등 2시간가량 씨름을 한 뒤에야 자체 사운드 프로그램이 정상화됐다. 협회는 30일 오후 11시 59분 경기 시작을 선언했다.

아프리카와 한화생명 선수들은 경기 시작 예정 시간보다 1시간 30분 앞선 30일 오후 6시 30분경 넥슨 아레나에 도착했다. 경기 시작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이들도 5시간 30분 가까이 넥슨 아레나 복도를 의미 없이 돌아다녔다. 팀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음성통화가 중요하지 않은 ‘칼바람 나락’으로 승패를 정하면 안 되느냐”는 뼈 있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경기는 31일 오전 2시 30분이 조금 넘어서야 끝났다. 아프리카가 세트스코어 2대 1로 이겨 4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미 탈진한 두 팀은 최선의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아프리카 ‘기인’ 김기인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경기가 지체돼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그래도 막상 이기니 기분이 좋다”면서도 “눈이 피로감을 느껴 조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협회는 31일 오전 1시경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협회는 “오디오 시스템 메인믹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기 종료 이후 해당 부품을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선수단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경기에 임하고, e스포츠 팬들에게 좋은 경험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시각 31일 오전 3시 25분, 넥슨 아레나의 두꺼비집은 내려가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주최 측은 경기 종료 직후 부터 사운드 분야를 포함한 경기장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정비하기로 했다. 당장 이날 오후에 대회 8강 2라운드 잔여 경기가 열리는 까닭이다. 오후 5시에는 T1과 젠지가, 오후 8시에는 담원 게이밍과 드래곤X(DRX)가 맞붙는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