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t 치웠는데도 절반…남편 여의고 온갖 물건 저장해둔 할머니

입력 2019-12-30 16:42
광주 동구청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A할머니가 수년간 모아둔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광주 동구 제공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못하고 모두 저장해두는 강박장애인 저장강박증.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저장해둬야만 편안함을 느끼는 탓에 쓰레기까지도 쌓아두면서 주변 사람들이 악취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광주 동구 지원1동의 한 주택가에서도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줄을 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7일 구청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A할머니(69)의 집을 찾아 하루 온종일 집안 곳곳에 쌓인 몇 년치의 쓰레기와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날 청소에 참여했던 한 봉사자는 “15t 쓰레기를 치웠는데도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며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부터 시작해 마을 계단, 대문 어귀, 마당에 집안까지 이어지는 온갖 건축 자재와 음식물 쓰레기 등 각종 폐기물은 아무리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이웃들의 민원으로 구청 직원이 A할머니를 면담하기 위해 집을 방문했을 때도 할머니는 어깨에 쓰레기 더미를 지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A할머니는 수년간 눈에 보이는 온갖 물건과 쓰레기들을 집 근방에 모아왔던 것이다. A할머니는 올해 초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까지 저장해두는 등 강박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광주 동구청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A할머니가 수년간 모아둔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광주 동구 제공

동구는 A할머니의 상황에 심각성을 느끼고 쓰레기 대청소를 지원하기로 했다. A할머니가 계속해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경우 건강에 문제가 생길 우려도 있을뿐더러 쓰레기 더미에서 화재가 발생할 위험도 큰 것을 고려해 대청소를 결정했다.

구청 직원과 재능기부센터 활동가, 어울림 사랑나눔봉사회 회원 등 40여명이 온종일 일했지만 치운 쓰레기는 눈짐작으로 절반 남짓이었다. 골목과 마을 계단, 대문 어귀 등 주변 이웃들이 오가는 길목에 있는 쓰레기들을 먼저 치우느라 대문에 들어서는 길목부터 마당과 집안 내부는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동구는 남은 쓰레기까지 치우기 위해 하루 정도 더 시간을 낼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청소가 모두 끝나면 집안 소독과 도배, 장판 교체 등 주거개선 활동도 할 계획이다.

임택 동구청장은 30일 “저장강박증을 앓는 분은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이웃과 행정기관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