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물 24%는 개인정보 함께 유출…여전히 가해자 특정은 어렵다

입력 2019-12-30 16:14


남자친구로 인해 불법촬영물 유포 피해를 당한 A씨는 자신의 사생활 사진뿐 아니라 신상정보가 함께 게시되고 있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극심한 불안감에 자살 충동까지 호소하던 A씨는 유포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삭제지원을 요청했다.

A씨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게재돼있던 사이트에선 불법촬영물 유포로 적발됐을 때 처벌을 피하는 방법과 다운로드하면 안 되는 영상 목록 등이 공유되고 있었다. 센터는 삭제요청을 계속 거부한 사이트 운영자를 경찰청 핫라인을 통해 수사 의뢰했다. A씨를 포함한 피해자 다수의 진술을 받아낸 경찰은 사이트 운영자를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검거하는 한편 사이트를 아예 폐쇄했다.

여성가족부는 30일 발간한 ‘2019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보고서’에서 지난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삭제지원 한 9만338건 중 2만1514건(23.8%)은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함께 유출된 경우였다고 밝혔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이름이 1만5816건(73.6%)으로 가장 많았고 직장 등의 소속이 2773건(12.9%), 나이가 2116건(9.8%), 주소가 763건(3.5%), 전화번호가 46건(0.2%) 등이었다. 여가부는 “불법촬영물의 키워드를 주로 피해자 이름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해자를 특정하기 힘들다는 디지털성범죄의 특성도 수치로 확인됐다. 해당 기간 피해를 본 1936명 중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603명(31.1%)에 달했다. 전 배우자 및 연인 등 친밀한 관계가 464명(24.0%), 모르는 사람이 346명(17.9%)이었다. 박성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삭제지원팀장은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당했을 때 특정 시간대에 해당 화장실을 드나든 사람은 파악되지만 이 중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도 ‘모르는 사람’으로 분류된다”며 “가해자를 전혀 알 수 없거나 모르는 사람을 합하면 절반가량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장의 유포를 막기 위해 일차적으로 불법촬영물 삭제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해 9명에 불과했던 삭제지원 인력을 올해 16명까지 늘리면서 월평균 삭제지원 건수는 2018년 3610건에서 2019년 8213건으로 1년 만에 2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 7월에는 피해자지원센터와 경찰청 간 핫라인도 구축해 수사, 법률 지원 연계 건수도 같은 기간 25건에서 44건으로 1.5배 늘었다. 박 팀장은 “증거가 많을수록 가해자를 특정하기 유리해진다”며 “센터가 보유한 피해 정보를 핫라인을 통해 수사기관에 적극 제공함으로써 가해자 파악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