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보 진영이 민주당 대선주자들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진영이 장악한 미 연방법원을 되찾을 계획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역대 그 어떤 정부보다 빠른 속도로 사법부에 보수 색채를 입히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위기 의식이 고조된 탓이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2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부를 극단적인 보수 일색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민주당 대선주자들에게 어떻게 연방법원을 탈환할 것인지 상세히 설명하라는 압박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방법원 판사는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면 상원 인준을 거쳐 최종 임명된다. 누적된 판례를 기초로 법 규법이 세워지는 국가이자 연방 체제인 미국 사회의 특성상 연방법원 판사의 판결은 국민들의 실제 삶에 큰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누가 연방법원 판사로 임명되느냐는 사회의 운영 방식과 이념 지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최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가 지명한 법관 12명을 인준하는 선물을 안겼다. 이로써 현 정부에서 임명된 종신 연방판사의 수는 187명으로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첫 3년간 항소법원 판사 50명을 임명했는데 같은 기간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5명을 임명했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자기 사람 심기’를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연방법원 판사는 정년이 없고 종신 재직할 수 있는 자리다. 중도 사직하거나 상급법원 판사로 임명되지 않는 한 공석이 생기지 않는다. 길게는 한 세대에 걸쳐 미국 사회의 이념 지향을 우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더힐은 특히 연방대법원의 보수화를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손꼽았다. 트럼프 취임 후 닐 고서치와 브렛 캐버노가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되면서 구성원 9명 중 보수 인사가 5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당장 대법원이 총기 규제, 성소수자, 낙태 등 뜨거운 쟁점 뿐만 아니라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등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과 관련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해리 리든 전 의원은 최근 언론 기고에서 “도둑맞은 대법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계획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우리의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고, 우리 아이들은 읽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적극적으로 사격 훈련을 받고 있다”며 “이제 도둑맞은 대법원은 이러한 문제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들을 발명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