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몰래 수천만원씩을 기부하고 있는 전북 전주 ‘얼굴없는 천사’의 성금 상자가 사라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전주의 자랑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30일 전주완산경찰서와 노송동주민센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얼굴없는 천사가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 두고 간 성금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누군가 이 성금 상자를 훔쳐간 것으로 보고 주민센터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는 등 수사를 펴고 있다.
이 천사는 이날 예년처럼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천사공원내 ‘희망을 주는 나무’ 밑에 (성금 상자를) 놨으니 가보라”라는 말을 남기고 끊었다. 이에 직원 3명이 현장에 가보았으나, 관련 상자를 찾지 못했다.
천사는 이후 2∼3차례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정확한 장소를 다시 알려줬으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주민센터측은 전주시에 보고하는 한편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CCTV를 통해 이전부터 현장 주변에 세워져 있던 차량을 용의자가 몰고 온 것으로 보고 뒤를 쫒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의 ‘얼굴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천만원이 담긴 종이상자를 놓고 사라져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8000여만원을 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갔다. 지난해까지 19년간 20차례나 보내준 성금은 모두 6억834만660원에 이른다.
이 천사는 지난해 12월에도 지폐 5만원권 1000장과 저금통에서 나온 동전 20만1950원 등 모두 5020만1950원을 기부했다. 그가 놓고간 A4 상자에는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함께 있었다.
전주시는 “특히 올해는 이 천사가 나타난 지 20년이 되는 해 인데, 너무나 엉뚱한 일이 생겼다”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한 시민은 “지속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도 이 천사가 쉬지 않고 선행을 계속해온 것을 보며 전주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자부심이 컸는데, 이 모든 게 한순간에 흔들리게 됐다”며 탄식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