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의과대학 1학년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것이 학내 자치기구의 조사로 밝혀졌다. 단체 대화방에 있던 한 학생이 거부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 같은 사실을 학내 기구에 신고하면서 남학생들의 만행이 드러났다.
경희대 의대 내 학생 자치기구인 ‘인권침해사건대응위원회’(대응위)는 단체 대화방에 가입된 남학생 1명의 제보로 지난 9월부터 해당 사건을 조사한 뒤 최근 사건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대화방에는 가해자 A·B·C와 신고자 D, 가해자들의 성희롱 발언을 방관한 4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이 있었다. 이중 가해자 3명이 동아리 내 동기 여학우와 선배, 같은 수업 내 유학생 등을 일상적으로 성희롱 및 모욕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OO는 빈약해서 내 취향이 아니다” “핥고 싶다” 등의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고, 일상적인 자리에서도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허락 없이 캡처해 이모티콘처럼 대화방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D는 이들의 발언을 지켜보다가 거부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지난 9월 20일 대응위에 신고했다. 하지만 D는 ‘내부고발자’ 신분이 된 상황에서 이 사안이 적절히 해결되지 못했을 때 가해자들을 수업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경우에 대한 불안감과 폐쇄적인 의대 사회에서의 인식 등을 우려해 사건 신고를 취하했다가 다시 신고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D의 신고를 토대로 사건 조사를 시작한 대응위는 지난 11월 가해자 A, B, C를 포함해 해당 동아리의 특정 학번 전체를 대상으로 대면 및 서면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A는 자신에 대한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고, B는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C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나머지 4명은 ‘단체 대화방 내에서 카카오톡 삭제가 빠르고 주기적으로 이뤄져 사건 대부분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A는 조사 후 단체 대화방에 있던 학생 7명에게 연락해 ‘채팅 내용 중 문제될 내용을 다같이 삭제하자’고 말했다. 또 D에게는 ‘내가 동아리 담당 지도교수님께 찾아가 부탁드리고, 교수님 압력으로 대응위 사건 처리를 무산시키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에는 수업에서 D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의심하고, 동아리 선배에게 조사의 부당함과 본인의 결백을 호소했다. 아울러 동아리 담당 지도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등 사건을 마무시키려는 시도도 했다.
이에 대응위 측은 지난달 29일 가해 학생 3명에게 공개 사과문 작성, 동아리 회원 자격정지, 학사운영위원회 및 교학간담회에 해당 안건 상정 등을 포함해 징계를 의결했다. 가해 학생들과 같은 학번으로 해당 동아리에 소속된 남학생 전체에게 경고 처분도 내렸다.
그러자 A는 공개 사과문을 내고 “저희는 조사 당시 대부분이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부인했지만 단톡방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니 저희가 저지른 행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당시에는 단순 농담거리라고 생각했지만 사건을 돌이켜보니 이런 발언들 하나하나가 모두 피해자분들께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앞으로 진행될 학교 측의 조사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징계절차에 따라 내려질 징계 결과를 응당하게 받아들이겠다”며 “저희의 잘못된 언행으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모든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B 역시 “피해자분들이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인격체임을 망각한 채 험담을 했다”며 “사과가 늦어져 피해자에게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준 점을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적었다. 이어 “부적절했던 제 행동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는 잘못된 언행으로 상처받는 분들이 없도록 한없이 부족한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숙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사과문 작성 및 동아리 회원 자격 정지 등의 학내 처벌로는 징계가 부족하다며 공론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또 가해자 C의 사과문은 올라오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