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유리조각·핏방울…한진家 소동, 모친이 외부 알렸다

입력 2019-12-29 17:54 수정 2019-12-29 18:27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뉴시스

지난 4월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한 이후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던 한진가(家)의 경영권 다툼이 ‘크리스마스 가족 회동’을 계기로 파열음을 내며 터져나왔다. 이번 한진가의 소동은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경미한 상처까지 입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음을 짐작케 했다.

재계에 따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족 회동을 위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이 고문의 집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조 회장은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이 고문이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언쟁을 벌이던 중 벽난로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집안의 물건을 부수고 욕설을 하는 등 소란을 피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집안에서 일어난 분쟁이 외부로 알려진 배경에는 이 고문이 회사 일부 경영진에게 보낸 사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는 28일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이 고문이 직접 깨진 유리와 자신의 상처 등을 찍어 보낸 사진이 외부로 공유되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고문이 보냈다는 사진 속에는 조각조각 부서져 깨진 유리창과 산산조각이 난 화병, 그리고 이 고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팔에 난 상처와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 등이 담겼다. 심각한 사진 속 상황은 조 회장 중심 경영 체제에 가족 간 이견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다만 한진 측은 “(소동이) 외부에 알려진 경위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한진가의 소동은 지난 23일 조 전 부사장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한진그룹의 현 상황에 대한 조현아의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고 조 회장 경영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부사장은 “조원태 대표이사는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가족 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선전포고 했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진행된 대한항공 기자간담회에서 “선대회장께서 평소에 말씀하셨던 내용이 ‘가족 간 화합으로 회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지분 상속과 관련해 “가족과 많이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 측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최소한의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의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발표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진가 ‘남매의 난’이 본격화됐다.

조 전 부사장의 발표로 가족 간 경영권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음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분쟁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내년 3월 지주사 한진칼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원태 체제’의 그룹 경영에 금이 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진칼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만일 주총에서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합심한다면 조 회장의 경영 체제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한진칼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8.94%다. 조 회장(6.52%)과 조 전 부사장(6.49%)의 지분율은 엇비슷하다. 조 전무와 이 고문은 각각 6.47%, 5.3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주요 주주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지분율 17.29%)를 비롯해 델타항공(지분율 10%) 및 최근 지분을 늘린 반도건설 계열사(한영개발, 대호개발, 반도개발 등 6.28%) 등이 있다.

이때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 조 전무가 합심하면 지분율은 18%대로 높아진다. 이는 단일최대주주인 KCGI보다 높은 지분율이다. 조 회장의 우군으로 여겨지는 델타항공 외에 KCGI와 반도건설 계열사 등은 어떤 전략을 취할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세 사람이 합심해 18%대의 지분율을 만드는 것 자체도 조 회장에겐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주총까지 3개월의 시간이 남은 만큼 가족 내 갈등을 봉합하고 분할 경영 체제에 극적으로 타협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경영권 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계열분리를 통한 사세 위축을 피할 수 없으며 그룹 내부 임직원들의 반발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영권 갈등으로 총수일가의 합산 지분율이 낮아지면 KCGI 측이 더욱 적극적으로 견제에 나설 것으로 보여 오너가의 경영권 위협만 커지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