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반정부시위로 3달 만에 490명 사망…표적 암살도 자행

입력 2019-12-29 17:24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26일(현지시간) 이란이 후원하는 아사드 알에이다니 총리 후보를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힌 사진을 들고 신발로 사진 속 그의 얼굴을 때리고 있다.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대가 반대하는 알에이다니를 총리로 지명하느니 사퇴하겠다며 의회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AP 뉴시스

이라크 정부와 사법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인권감시 기구인 인권위원회가 3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자국내 반정부시위에서 군·경찰의 유혈 진압과 폭력 행위로 최소 490명이 숨지고 2만2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10월 1일 시작된 반정부시위의 여파로 총리와 대통령이 차례로 사임했지만 시위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AP통신 등은 28일(현지시간) 인권위 관계자를 인용해 “사망자 490명 중에는 시민운동가 33명이 포함됐고, 이들은 당국의 표적 공격으로 암살됐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당국은 시위가 시작된 이래 최루가스, 굉음을 내는 음속 폭음 장치 등을 사용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해왔다. 인권위는 시위에 참가한 시민 56명이 납치돼 행방불명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납치·실종에 시위 진압을 담당하는 이라크 내무부가 관여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반정부시위는 이라크의 만성적인 실업난과 민생고, 집권세력의 부정부패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수도 바그다드와 이라크 남부에서 자발적인 시위가 이어졌고 이라크 정부는 여러 개혁 정책을 발표했지만 분노한 시위대를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라크 이슬람 종교계까지 시위대 편으로 돌아서자 아델 압둘 마흐디 총리는 지난 1일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AP통신은 “명확한 지도자가 없는 이번 반정부 시위가 이라크 집권 세력에 10여년 만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위의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웃나라 이란에 대한 분노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으로 연결되는 시아파 벨트의 맹주인 이란은 오랫동안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이란의 내정간섭과 친 이란 성향의 자국 지도층에 불만을 가진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서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라크 의회 다수 정파가 추천한 총리 후보를 최종 임명해야 하는 바르함 살리흐 대통령까지 지난 26일 사의를 밝히며 이라크 정국은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리흐 대통령은 최대 정파인 친 이란계가 추천한 총리 후보가 사회 불안과 유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며 “시위대가 거부할 사람을 임명하느니 내가 사임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라크 내 친 이란 세력은 살리흐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히자 미국이 공작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격에 나섰다. 이라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아파 민병대를 이끌고 있는 카타이브-헤즈볼라는 27일 성명을 통해 “살리흐 대통령의 사임 결정이 의심스럽다”며 “그는 이라크를 혼돈으로 끌어당기려는 미국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했다”고 비난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