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계부정 의혹 제기하다 해임된 회계사…‘공익신고자’ 인정됐다

입력 2019-12-29 16:56 수정 2019-12-29 17:08

기업의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했다가 해임된 유명 회계법인의 파트너 회계사를 공익신고자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회계부정에 대한 증거가 부족했더라도 윗선의 회계감사 방해 행위를 신고했다면 공익신고자로 보호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안진)의 파트너 회계사였던 박모씨는 2015년 6월 치과 임플란트 1위 업체 덴티움의 회계감사를 하다가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했다. 그는 이 회사가 2011년 회계연도 이후 미국 현지법인을 종속회사로 두고 연결재무제표(지배·종속관계 회사의 종합재무제표)를 작성해 온 사실을 파악했다.

박씨는 “미국 현지법인을 종속회사로 볼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2011~2014년 회계연도 감사를 맡았던 다른 회계법인에 근거를 캐물었다. 박씨는 당시 작성된 감사조서에 2010년 1월 1일자로 작성된 주주 간 계약서가 첨부돼 있고, 계약서에 ‘덴티움의 미국 현지법인 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덴티움에 위임한다’는 내용이 적혔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이 회계법인은 정작 계약서를 덴티움에서 받은 시기는 2013년이라고 했다.

박씨는 계약서가 위조됐다고 판단, 덴티움에 ‘실제 작성 일자가 2010년 1월 1일이 아니면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요구했으나 받지 못했다. 그는 연결재무제표가 허위 작성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2015년 회계연도 연결대상에서 이 회사의 미국 법인을 뺀 감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한국공인회계사회는 2017년 2월 박씨가 진행한 2015년 회계감사를 감리하면서 “감사를 소홀히 했다”며 ‘경고’ 조치를 내렸다. 박씨는 “위조 서류를 냈는데도 진실을 밝혀낸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당시 안진 부대표는 박씨에게 “회사가 매우 곤란하다. 허위자료 주장 부분은 빼줬으면 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사실관계를 사후 보완한 자료를 위조서류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위조로 표현한 부분을 ‘감사인 입장에서 인정할 수 없어 연결대상에서 제외했다’로 바꿔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안진 측은 2017년 8월 박씨에게 구조조정 대상자임을 통보했다. 이에 박씨는 당시 대표이사와 만나 “부대표가 감리방해 행위를 했다.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임하는 것은 부당한 불이익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진 측은 그해 10월 해임을 강행했다. 박씨는 지난해 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자신을 ‘공익신고자’로 판단해 해임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박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장낙원)는 회계사 박씨가 권익위를 상대로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신청을 기각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부대표가 진술 번복을 요구한 것은 조사 방해행위”라며 “대표이사에게 이를 알린 것은 공익신고”라고 했다.

안진 측은 “경영난 때문에 구조조정이 필요했고, 박씨는 저성과자였다”며 “해임과 공익신고는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익신고가 있은 때로부터 2년 내 불이익조치는 공익신고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일축했다.

다만 재판부는 회계부정 의혹은 증거 불충분으로 봤다. 재판부는 “계약서가 진정한 의사로 작성됐다면, 기재된 작성 일자가 실제와 달라도 회계 정보 위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