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9일 “이제는 우리도 국민 요구에 맞는 소위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라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유권자가 집권 세력은 별로 업적이 없으니 표를 주기는 싫은데, 막상 자유한국당에 표를 주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제학자 출신인 김 전 위원장은 1981년부터 2016년까지 여당과 야당을 넘나들며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김 전 위원장은 “(문민정부 이후) 30년 동안 진보·보수가 각각 15년 한 셈”이라며 “보수·진보 이 사람들이 사실 앞으로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걸 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은 여당이니 집권에 대한 평가를 받는 상황이고, 야당은 집권당이 그동안 크게 업적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받아먹는 형태인데, 지금 한국당은 그걸 고스란히 받아먹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 자신이 ‘새로운 정치세력’ 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냐는 질문에는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런 뜻을 갖고 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사례로 들어 “마크롱이 출현했을 때 상황과 우리 현실이 어느 정도 유사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한국 정치가 ‘새 인물’로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드골 정부의 퇴진 이후 사회당과 보수당이 번갈아 집권했지만, 집권세력이 늘 기득권에 매몰되는 현상이 반복됐다. 결국 정치 신인인 마크롱 대통령이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태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세대교체가 돼야 한국에 미래가 있다고 본다”며 “(새로운 정치세력에는)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당이 주도하는 ‘보수 통합론’에 대해 “모든 걸 정치공학적으로, 이렇게 엮으면 될 거라 생각하는데, 국민들 정서를 정확히 읽고 선거에 임하지 않으면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 대해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고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리더십이 확인되는 건데, 그것이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자신이 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받은 데 대해선 “모르겠다. 전혀 그런 얘기를 들은 게 없다”고 답했다.
김 전 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선 “과거 어떤 소위 여당보다 더 경직돼있다”며 “다른 의견이 전혀 수용되지 않다 보니 그저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가는 정당의 형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권 여당이 검찰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고, 이런 식의 여당이라는 게 과연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검찰 개혁’과 ‘탈원전 정책’을 예로 들어 “자기가 한번 생각했던 데서 떠나질 못하는 그런 성격을 가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2년 반 동안 문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가 가진 문제가 실질적으로 어떻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여러 의견을 들어보면 (집권 후반기 국정기조) 변화가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선 “과연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 정치에 맞는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기본적으로 구상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한국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에 대해선 “당연히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했고, “민주당도 한국당이 하면 안 할 수 없지 않나”라고 전망했다.
그는 독일 뮌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 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7년 헌법 개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헌법 119조 2항)을 주도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총선 정국을 이끌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제치고 제2당에서 제1당이 됐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의 손자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