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폰 ‘보관했다’ vs ‘빼돌렸다’… 택시기사 유죄→무죄

입력 2019-12-29 11:01
자료 이미지=픽사베이

승객이 두고 내린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택시기사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택시기사가 이발소 주인에게 ‘손님 휴대전화’라며 충전을 부탁하는 등 여러 정황에 비춰 휴대전화를 돌려주기 위해 보관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택시기사 김모(55)씨의 점유이탈물횡령 혐의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2월 28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승객 A씨가 택시 안에 두고 내린 96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보관하다가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배우자의 휴대전화로 6차례 정도 잃어버린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도 보냈지만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분실한 지 이틀 뒤 김씨는 경찰 연락을 받고 출석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돌려주려 보관 중이었는데 잠금이 열리지 않아 전화를 걸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1심은 김씨가 휴대전화를 불법으로 빼돌리려 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가 이발소에 와서 ‘손님이 놓고 내린 휴대전화’라며 충전을 부탁했지만 충전기와 안 맞아 해주지 못했다는 이발소 주인 진술 등이 근거가 됐다. 또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충전기로 충전할 수 없고, 화면을 켜는 방식도 달라 김씨 주장 대로 부재중 전화나 문자 확인이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반면 2심은 “휴대전화에 당시 잠금장치가 돼있지 않았고, 김씨가 경찰 연락을 받고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 내 블랙박스 영상을 모두 삭제했다”며 1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증인의 법정 진술 신빙성을 인정한 1심 판단을 뒤집기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며 “원심이 밝힌 판단은 1심 판단을 뒤집을 만큼 특별하거나 합리적인 사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휴대전화 특성, 김씨 연령, 휴대전화를 보관한 이후 보인 김씨 행동에 비춰볼 때 김씨가 휴대전화에 잠금장치가 돼있다고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김씨가 휴대전화로 통화나 문자메시지 발송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발소 주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블랙박스 영상에 대해서도 “고의로 삭제했더라도 이 사건을 이유로 삭제했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봤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