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 헌법소원 대상 아니다”

입력 2019-12-27 15:14 수정 2019-12-27 17:48

헌법재판소는 27일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는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이날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 결정했다.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낸 지 3년 9월 만에 나온 결정이다.

각하는 헌법소원 청구가 헌재의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 헌재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자체를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헌재는 “해당 합의는 정치적 합의이며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며 “헌법소원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5년 박근혜정부가 체결한 합의는 법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헌재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의 절차와 형식 및 실질에 있어 구체적 권리 의무의 창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합의에서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시하는 부분을 두고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가 드러나지 않아 법적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과 일본 정부의 출연에 관한 부분도 ‘강구한다’ ‘하기로 한다’ ‘협력한다’ 등 표현처럼 구체적 계획이나 의무 이행의 시기, 방법, 불이행 시 책임 등이 정해지지 않은 추상적·선언적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관한 우리 정부의 견해 표명 부분도 양국의 권리와 의무를 구체화하고 있다고 볼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14일 서울 종로구 옛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일반적인 조약이 서면의 형식으로 체결되는 것과 달리 이 합의는 구두 형식의 합의이고 홈페이지에 게재된 발표문의 표현조차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다”면서 “한일 양국의 법적 관계 창설에 관한 의도가 명백히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국가 간 조약이 아닌 ‘비구속적 합의’라고 규정했다. 이어 “비구속적 합의는 그로 인해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이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피해자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당시 정부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이듬해인 2015년 3월 해당 합의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외교적으로 보호받을 권리, 재산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외교부는 이날 헌재의 각하 결정에 대해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지난해 6월 “헌법소원 요건상 부적법하기 때문에 각하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는 의견서에서 헌법소원은 공권력에 의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됐는지를 판단하는 것인데 해당 합의는 법적 효력이 있는 조약이 아닌 정치·외교적 행위여서 헌법소원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