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법치주의 후퇴, 국가 기능 저해시켰다”면서도 영장은 기각

입력 2019-12-27 04:00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조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는 인정됐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이례적으로 “범죄 혐의는 소명된다” “범행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 “국가 기능의 행사를 저해했다”는 사유도 적었다.

기각 결정의 이유는 조 전 장관의 주장처럼 ‘죄가 안 돼서’가 아니었다.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다른 사건으로 이미 구속된 점, 조 전 장관의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검찰은 “전모를 밝히는 수사를 계속 하겠다”고 밝혀 청와대를 향한 수사 확대를 예고했다. 조 전 장관에게 유 전 부시장 감찰 무마 청탁을 건넨 소위 ‘실세’들은 추가 조사가 기정사실화됐다.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해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이 ‘알고도 덮었다’는 직권남용 혐의 자체를 인정한 데다 그 악영향이 국가적 차원이라고까지 밝힌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정상적인 감찰 종료로서 ‘죄가 안 된다’는 주장을 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죄질이 나쁘다거나 ‘법치주의 후퇴’가 언급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기각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도 “법원이 구속영장 청구의 취지 자체는 인정했다”고 받아들였다. 검찰이 애초 영장을 청구한 가장 주된 이유는 “조 전 장관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추가 수사 필요성이었다. 검찰은 26일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조 전 장관이 이른바 ‘구명 운동’의 영향이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한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장심사 말미에 권 부장판사는 “김경수 경남지사 등 외부 인사들의 영향력이 감찰 중단 결정에 영향을 줬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검찰이 조 전 장관과 이른바 ‘실세’들의 활발한 통화 사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관련자들의 뒷받침 진술을 제시한 뒤 이뤄진 질문이었다. 조 전 장관은 이때 “전혀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여러 의견을 듣고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여러 유력자들의 뜻대로 ‘불법적 봐주기’를 했다고 자백한 셈이며, 법원도 이를 확인해 혐의가 소명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본다. 검찰은 유 전 부시장이 김 지사와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천경득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을 통해 조 전 장관, 백 전 비서관 등에게 감찰 무마 요지의 청탁을 한 사실을 이미 확인한 상태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청탁을 판단에 고려하지 않았어도 죄가 되는데, 사적인 이유로 판단에 고려까지 했다고 법정에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 전 장관이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애썼지만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조 전 장관에게 청탁을 건넨 유력자들은 추가 조사가 불가피하다. 조 전 장관은 구속은 피했지만 ‘정무적 판단’ 변론을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방극렬 박상은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