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 구조물 맞아 사망했는데…‘자연재해’라는 스페인 정부

입력 2019-12-27 00:13
이지현씨가 석재 조형물에 맞아 숨진 스페인 마드리드 관광청 건물. 연합뉴스=이지현씨 부모 제공

스페인에서 유학생활 중이던 여성이 관공서 건물 외벽의 석재 파편에 맞아 숨졌지만 스페인 정부는 ‘자연재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유족의 주장이 제기됐다. 심지어 현지 경찰이 증거를 버리고 현장 사진만 남겨 구체적인 사고 정황도 알지 못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21일 태풍 ‘엘사’가 몰아친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에서 이지현(32)씨는 마드리드 관광청 건물 6층에서 떨어진 석재 조형물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이씨는 국내 의류업체를 다니다 지난 3월부터 스페인에서 공부하며 의류 브랜드 ‘자라’(ZARA) 입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딸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받고 곧장 스페인으로 간 이씨의 부모는 마드리드 주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당황했다. 5시간을 기다린 끝에 판사 영장을 겨우 받아 싸늘하게 식은 딸의 주검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지현씨가 숨진 스페인 마드리드 관광청 건물 앞에 추모 꽃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이지현씨 부모 제공

부모는 이후에도 딸의 시신이 안치된 주 정부 산하 법의학연구소 측으로부터 “현지 장례업자를 정해 빨리 돌아가라”는 말만 들었을 뿐 다시 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주 정부는 스페인 관공서 외벽 구조물이 추락한 것임에도 ‘자연재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부모는 경찰이 외벽 구조물 등 사건 증거를 버리고 현장 사진만 남겨 구체적인 사고 경위조차 알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더군다나 현지 경찰은 사고 현장 사진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하라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씨 부모는 최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스페인 정부의 대처에 분통을 터트리고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을 토로했다. 유가족의 호소문을 접한 누리꾼들은 외교부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한편 마드리드 주 정부 홈페이지에도 비난의 글을 올리고 있다.

외교부는 주한스페인대사관에서 사건을 인지한 즉시 담당 영사와 직원 등을 병원과 사건 현장에 보내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국내 유가족에게 연락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지에서) 유가족과 긴밀히 협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대한 영사 조력을 해왔으며 계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