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9)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이 베트남의 ‘박항서 매직’과 같은 ‘축구 한류’를 일으킬 각오를 밝히고 떠났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본선행이 좌절됐고,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5전 전패로 부진하다. 신 감독은 2021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주력할 계획이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축구협회와 대표팀 감독직 계약 체결을 위해 출국길에 오른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축구협회에서 지금까지 나를 키워 줬지만, 우리나라에서 내가 보답할 길이 없다.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워낙 국위선양을 많이 했는데, 더불어 (국위선양)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오는 28일 인도네시아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계약을 체결한 뒤 29일 귀국하고, 다음 달부터 사령탑 업무를 시작한다.
계약 기간은 3년. 이 기간을 완주하면 카타르월드컵 본선 폐막 시점까지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직을 유지할 수 있다. 카타르월드컵은 2022년 11월 21일에 개막해 12월 18일에 폐막할 예정이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에서 국가대표팀, 올림픽(U-23) 대표팀, U-20 대표팀을 모두 지휘한다. 총감독보다는 각급 대표팀을 지휘하는 형식이라고 신 감독은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2차 예선 G조에서 승점 1점도 확보하지 못하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모두 진 상태에서 3경기만을 남기고 있다. 2차 예선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력 통과는 이미 무산됐다. G조 2위 말레이시아가 승점 1점만 챙겨도 인도네시아의 탈락은 확정된다. 인도네시아의 다음 경기는 내년 3월 26일 태국과의 6차전이다.
인도네시아축구협회도 ‘기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 감독은 “올림픽은 이미 예선에서 탈락했고,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5전 전패로 부진하다. 인도네시아에서 U-20 월드컵에 집중하길 원하고 있다”며 “우선 개최국으로 출전하는 2021 FIFA U-20 월드컵에 주력할 계획이다. 지난 미팅 때 스즈키컵 얘기도 했다. 욕심이 많더라”며 웃었다. 스즈키컵은 ‘동남아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대회로, 가장 최근인 지난해 대회에서 박 감독이 베트남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대표팀을 지휘한 뒤 물러났다. 조별리그 F조에서 이미 스웨덴, 멕시코에 모두 패배하고 임한 마지막 3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대 0으로 격파하고 탈락시켜 파란을 일으켰다. 이 승리는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냈다. 그 이후로 신 감독을 향한 러브콜이 빗발쳤다. 중국·일본 프로구단의 영입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신 감독은 “내 이익을 위해 클럽으로 가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우리보다 한 단계 낮은 팀에 전수하면 어떨까 싶었다. 얼마나 수준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며 “(인도네시아가) 기술적으로 크게 밀리지 않지만, 65∼70분이 되면 전반과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떨어지는 체력의 문제가 보였다. 이런 점을 세심하게 바로잡아 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대했다.
신 감독은 한국 대표팀 골키퍼 코치를 지냈던 김해운 코치, U-20 대표팀에서 경험을 쌓은 공오균 코치, 러시아월드컵에 동행했던 이재홍 피지컬 코치와 인도네시아로 동행할 계획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