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혈액암인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완치 가능성을 보여주는 4세대 표적항암제의 희망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소 2가지 이상의 기존 표적 항암제에 반응이 없거나 부작용이 나타난 환자들에게 뛰어난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됐다.
국내 의료진을 포함한 세계 11개국 공동 연구팀에 의해 이뤄진 이번 연구결과는 권위있는 의학잡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 최신호에 발표됐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장 김동욱 교수팀이 주도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노바티스가 개발한 4세대 표적항암제인 ‘애시미닙(Asciminib)’의 1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최소 2가지 이상의 표적 항암제에 내성과 불내약성(부작용이 나타남)을 보인 150명의 한국인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2001년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인 ‘이매티닙(글리벡)’이 도입되면서 생존 기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났고, 불치병에서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매티닙의 내성 환자가 증가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사티닙(스프라이셀), 닐로티닙(타시그나), 라도티닙(슈펙트), 보수티닙(보슬립) 등 2세대 표적항암제의 개발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1, 2세대 표적항암제에 모두 내성을 보이는 ‘T315I 돌연변이’에 대한 3세대 표적항암제 포나티닙(이클루시그)까지 개발되며 장기간 생존율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왔다.
문제는 이들 표적항암제가 일정 수준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으나 공격 부위에 또 다른 돌연변이가 발생하며 효능을 잃어버리거나 장기간 사용에 의한 심혈관계 부작용이 증가하는 점이다. 평생 표적항암제를 복용해야 하는 문제도 예상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애시미닙은 기존의 표적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거나 심각한 부작용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없었던 150명의 만성기와 가속기 환자를 대상으로 14개월간 추적·관찰한 이번 1상 임상 연구에서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됐다.
141명의 만성기 환자 중 혈액학적 재발 상태였던 환자의 92%가 완전 혈액학적 반응을 보였고, 완전 염색체 반응이 없었던 환자의 54%가 완전 염색체 반응을 다시 얻은 것으로 평가됐다.
12개월까지 주요 유전자 반응은 평가가 가능한 환자의 48%에서 얻어졌으며, 특히 3세대 표적항암제 포나티닙에 내성 또는 불내약성을 가진 환자의 57%(14명 중 8명)에서 주요 유전자 반응을 획득했다.
복용 후 피로감, 두통, 관절통, 고혈압, 혈소판 감소증 등의 부작용이 있었으나 대부분 경증이었다.
애시미닙은 기존 1, 2, 3세대 표적항암제의 결합 부위와는 전혀 다른 위치(BCR-ABL1 단백질의 myristoyl 결합 부위)에 선별적으로 결합한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BCR-ABL1 단백질을 비활성형 상태로 고정시켜 치료 효능을 보다 더 높일 수 있고, 기존에 문제된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김동욱 가톨릭혈액병원장은 26일 “이번 연구결과로 향후 성공적인 개발 가능성을 높인 애시미닙은 기존 표적 항암제와 달리 암 단백질의 전혀 다른 표적을 공격하기 때문에 기존 항암제와의 병용요법 가능성을 높여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완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환자가 평생 복용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 기존 표적 항암제 단독요법의 문제점을 극복해 단기간의 병합치료 후 성공적인 치료 중단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동시 진행 중인 2상과 3상 임상시험까지 마무리돼야 최종적인 효과와 안전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국내에서 연간 300~500명이 발생하며 이 가운데 5~10% 정도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걸로 알려진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