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만 해도 성탄절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남동생이 이유도 모른 채 바다에 가라앉은 지 1000일이 된 채로 성탄절을 맞았습니다.”
2017년 3월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등항해사 허재용씨의 누나 경주씨 목소리가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졌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경주씨의 울음 소리는 성탄 분위기를 즐기러 나온 시민들을 광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으로 이끌었다.
성탄절을 맞아 서울 도심 곳곳에서 노동자, 노숙인,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배와 연대 집회가 열렸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예배 준비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예배를 올렸다. 시민 700여명이 참여해 남대서양에서 침몰된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22명을 추모했다.
배덕만 목사는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 국민이 타지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10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고 원인 규명 및 유해 수습이 안 됐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주씨는 “내 동생이 탄 배처럼 돈 때문에 화물선을 불법 개조한 배가 우리나라에만 30여척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운행 중”이라고 말했다. 또 “언제 또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국회는 2차 심해 수색에 대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누구나 ‘참사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이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한국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등을 위한 예배도 열렸다. 대한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와 서울대 천주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광화문광장 남측에서 ‘일터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평화를 바라는 성탄대축일 미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요금수납 노동자와 시민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주최 측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가장 가난하고 약한 모습으로 오셨던 아기 예수께 자비와 은총을 청해 본다”며 “생계와 안전을 위협받는 일터에서 일하는 제2의 김용균,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공농성 199일을 맞은 삼성해고 노동자 김용희(59)씨를 위한 예배도 서울 강남구 농성장에서 열렸다. 철탑 위에서 성탄절을 맞은 김씨는 “삼성이 노조 와해 사건에 연루된 임원들에 대한 실형이 선고된 이후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는 형식적인 사과에 불과하다”며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복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에서 연대농성 중인 이재용(60)씨는 “농성 200일이 되기 전에 땅에 내려오게 하고 싶었는데 불가능할 것 같다. 용희씨 건강이 날로 나빠지고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다일공동체는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 앞마당에서 32번째 거리 성탄예배를 열고 노숙인, 무연고 노인 약 2000명에게 밥과 방한복을 제공했다. 방한복을 손에 쥔 노숙인, 노인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혼자 사는 조옥자(72)씨는 “성탄절에 외로워서 아침 7시 첫 차를 타고 의정부에서 여기로 왔다”며 “형편이 어려운데 이렇게 따스한 옷을 주다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