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 또 작심삼일?…“의지를 믿지말고 습관부터 바꿔라”

입력 2019-12-25 13:29
배우 하정우는 매일 3만보 이상을 걷는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에스컬레이터나 무빙워크는 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지름길보다는 에움길을 택한다. 만약 3만보를 채우지 못했다면 밤늦게라도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한다. 그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에는 이렇듯 걷기에 빠진 그의 일상이 어떠하며, 하정우가 전하는 걷기의 미덕은 무엇인지가 담겨 있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생활 습관처럼 굳어진 행동을 일컫는 ‘루틴(routine)’의 중요성이다. 하정우가 지키는 루틴은 크게 세 가지다. ①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러닝머신에서 몸을 푼다. ②아침 식사는 반드시 챙겨 먹는다. ③특별한 일이 없다면 작업실이나 영화사엔 걸어서 간다. 그는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며 “나는 지금 당장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하정우는 힘들 때마다 이런 말을 되뇐다고 한다. “아, 힘들다. 걸어야겠다.”

1950년 이후 감자튀김과 햄버거의 1인분 양은 각각 3배, 4배나 늘었고 탄산음료의 양도 6배나 증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양이 늘었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할당된 음식은 다 먹곤 하는 습관 탓이다. 픽사베이

습관이 일상의 43%를 지배한다

하정우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걷기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걷다 보면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렇게 걸어야 하나 회의감이 든다는 점이다. 하정우도 이 같은 유혹의 순간을 자주 맞닥뜨렸다. 특히 과거 미국 하와이에서 하루 10만보 걷기에 도전할 때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사점(死點)’을 마주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나 자문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해빗(HABIT)’을 소개하기에 앞서 하정우의 책을 길게 복기한 이유는 ‘루틴’의 중요성을 설파한다는 점에서 두 책이 묘하게 닮아 있어서다. 저자인 웬디 우드(65)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로 ‘습관 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로 통한다. 책에는 자신의 의지만 믿고 뭔가를 결행하기보다는 습관을 바꾸는 것을 통해 목표를 이루라는 간명한 메시지가 실려 있다.

많은 이들은 무언가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일단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작만 한다면 저마다 타고난 어기찬 의지력이 성공의 끌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여긴다. 한데 저자는 이런 주장에 반기를 든다. 허깨비 같은 말일 뿐이라고 강조한다(그는 일단 시작해보라는 나이키의 슬로건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을 “정신력에 대한 과대평가가 탄생시킨 세속적인 계명”이라고 깎아내린다).

그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계에는 이미 무수히 많은 실험을 통해 의지력보다는 습관이 일상을 뒤흔들고,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고, 이를 닦고, 출근하고, 컴퓨터를 켜는 모든 일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의식적 자아”가 결행하는 행동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서 습관에 지배되는 행동의 비율에는 개인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며 “(일상에서) 습관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43%를 약간 넘는다”고 말한다.

습관의 지배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1958년부터 65년까지 치러진 8번의 선거를 분석했다. 투표율에 영향을 끼친 요인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연구가 이뤄지기 전에 학자들이 세운 가설은 이랬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선거 결과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지지하는 정당을 향한 애정이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투표 행위에는 어떠한 일관성도 없었다. 마치 그들에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투표하러 가는 습관이 형성돼 있는 것 같았다. …투표마저 실은 은밀하게 숨은 비의식적 자아, 즉 습관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심리학계에서는 인간을 습관에 따라 행동하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여기지 않았다. 목표를 정하고, 보상을 기대하면서 합리적인 행동을 좇는 주체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많은 행동이 동기와 의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웬만한 ‘독종’이 아니고서는 의지력만으로 뭔가를 이뤄내긴 힘들다는 진실이 도출된 것이다. 나쁜 습관은 놔둔 채 욕망을 억제하라고만 말하는 것은 “압력밥솥처럼 분노가 폭발할 때까지 욕망과 충동을 억누르고 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인내심이란 “갓 나온 수프보다도 빨리 식어”버릴 정도로 얄팍하다. 그러나 습관은 다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에 거대한 변화가 닥치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와도 습관은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간다.”



“미즈 앙 플라스”

어쩌면 상당수 독자는 누구나 아는 고리타분한 가르침 아니냐면서 저자의 주장을 낮잡아볼 것이다. 하지만 새해를 맞을 때마다 매년 작심삼일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대목이 적지 않다. 저자는 의지를 과신하지 말고 좋은 습관을 들이길 주문하면서 방법까지 가르쳐준다.

저자가 전하는 좋은 습관을 들이는 ‘습관 설계 법칙’은 다섯 단계로 구성돼 있다. ①자신을 중심으로 늘 똑같은 상황을 유지하라. ②좋은 습관을 방해하는 ‘마찰력’을 제거하라. ③어떤 행동을 유발하는 자신만의 신호를 찾아라. ④행동 그 자체가 보상이 되도록 설계하라. ⑤습관의 마법이 시작될 때까지 이 모든 것을 반복하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②번이다. 그렇다면 좋은 습관을 방해하는 마찰력을 제거하라는 뜻은 무엇일까. 예컨대 매주 3회 이상 운동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먼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헬스장이나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 멀다는, ‘마찰력’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운동이 습관이 되려면 집 근처 헬스장부터 찾아서 등록하거나 집 앞 공원에서 운동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선행돼야 한다. 저자는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단 하나의 개념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 단어가 마찰력이 되길 바란다”고 적어놓았다.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주방장들은 ‘미즈 앙 플라스(Mise en Place)’라는 문구를 지고의 원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미즈 앙 플라스는 조리에 필요한 식자재나 도구가 제자리에 놓이기 전엔 요리를 시작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습관 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슬로건은 “불필요한 마찰을 감소시키기 위해 고안된 작지만 거대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새해를 앞두고 당신은 어떤 계획을 세웠는가. 다시 말하지만 당신의 의지력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 가령 독서가 목표라면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책 읽는 습관에 젖어 들면서 어느 순간 다독가로 거듭날 테니까 말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