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성탄 전야가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얼룩졌다. 시위대는 자정 넘어서까지 홍콩 시내 곳곳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은행 점포를 부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물대포까지 동원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가 지하철역 입구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일부 역이 폐쇄되기도 했다.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시위대는 전날 카오룽 반도의 침사추이와 몽콕, 홍콩섬의 코즈웨이베이 등에서 경찰과 충돌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밤 11시쯤 홍콩 시위대 관련 계좌를 동결한 HSBC 은행의 한 지점에 몰려가 유리벽을 부수고 입구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홍콩 경찰은 지난 19일 시위대가 ‘스파크 동맹’이라는 단체를 통해 모은 ‘투쟁 자금’ 7000만 홍콩 달러(약 105억 원)가 든 계좌를 동결했다. 경찰은 이 자금이 젊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보상금’ 등 불법 활동에 사용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돈세탁 및 자금 유용 혐의로 4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몽콕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시위를 벌였고, 일부 시위대가 몽콕 지하철역 입구에 불을 지르고 시설을 훼손하는 바람에 역이 폐쇄됐다. 지하철 당국은 얼마 후 침사추이 지하철역 운영도 중단했다.
침사추이의 하버시티 쇼핑몰에서는 시위대가 사복 경찰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몰에 진입한 진압 경찰에 물건을 던지는 등 충돌을 빚었다.
시민들은 지난 7월 21일 밤 위엔룽 전철역에서 100여 명의 남성이 각목 등으로 시민들을 구타한 사건을 거론하며 “경찰은 그때 어디 있었느냐” “양심은 있느냐”고 비난했다.
쇼핑몰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던 제이슨 응(51)은 “사회 불안의 책임이 경찰에 있다”며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 경찰은 훈련을 더 받아야 한다”고 비꼬았다. 침사추이와 몽콕의 시위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앞서 8시쯤에는 위엔룽의 한 쇼핑몰에서 경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한 남성이 난간을 넘어 1층으로 떨어지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 남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섬 코즈웨이베이 타임스퀘어에서도 저녁 8시쯤부터 검은 옷에 복면을 한 시위대가 모여 “광복 홍콩, 시대 혁명‘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홍콩 경찰은 “과격 시위대가 침사추이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져 직원의 안전을 위협했다”며 “폭도들은 교통신호등을 부수고 도로를 차단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시민들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망쳤다”고 비난했다.
크리스 탕 홍콩 경무처장은 밤늦게 침사추이 시위 현장을 찾아 근무 중인 경찰관들을 찾아 격려하고 시위대에 공공질서 교란 행위를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탕 처장은 “검은 복장을 한 시위대가 돌아다니며 파괴를 해서는 안 된다”며 “홍콩은 평화로운 크리스마스를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SNS에 공개한 녹화영상에서 “크리스마스는 기쁜 날”이라며 “홍콩 사람들이 평화롭고 안전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