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내수 부진 등 저성장 국면 속에서 극일, 오너리스크, 소송전 등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국가 주력산업인 반도체를 비롯해 정유, 배터리 산업은 암울한 한 해를 보냈지만 내년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반면 디스플레이, 항공, 유통업계 등은 내년에도 실적 개선을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경영환경, 중국의 기술추격 등 해결되지 않은 난제도 여전히 많다.
24일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경기 둔화를 가져왔던 미·중 무역분쟁이 내년에 완화될 조짐이 보이고 일본의 수출 규제도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진전이 없는 만큼 내년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긴 이르다”고 전했다. 실제 연말 임원인사에서 주요 대기업들은 위기 속에서 변화보단 안정을 택했다. 실적이 부진한 사업은 축소하고, 기업별 계열사 주요 임원들은 유임됐다.
연초에 업황 개선이 가장 기대되는 업계는 반도체다. 메모리반도체는 인터넷데이터센터 증설, 5G 시대 진입, 서버용 데이터 처리량 증가 등으로 D램 수요가 늘면서 거래가격이 회복되는 추세다. 낸드플래시도 가격 회복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정유업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연료유 황 함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저유황 선박연료유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연이은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로 대책 마련에 바빴던 배터리 업계는 내년 글로벌 전기차 수요 확대, 해외 생산공장 준공 등으로 전반적인 산업 성장이 기대된다.
하지만 중국의 공급 과잉으로 액정표시장치(LCD)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업계는 위기 돌파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수요 부진을 겪고 있는 항공업계, 실적 악화로 사업 축소와 구조 개편에 나선 유통업계도 새해 전망이 어둡다. 롯데는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고, CJ는 제일제당, ENM, 푸드빌 등 주요 계열사들이 실적 악화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의 오너리스크나 소송전도 변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아직 연말 임원인사를 내지 못하는 등 내년 사업계획 구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 유출·배터리 분리막 특허 침해 문제를 놓고 국내외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LG의 경우 2년 연속 구조조정에 돌입한 디스플레이에 이어 LG화학까지 소송전에 휘말리면서 핵심 계열사들이 지고 있는 부담이 크다.
미·중 무역 분쟁,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등 대외적 악재 영향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미·중과 한·일이 대화에 나서면서 내년 상황은 좀 더 나아지겠지만 기업들이 체감하는 리스크는 여전히 크다”며 “정치·외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상황은 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