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의원이 ‘6411초’ 동안 필리버스터 한 이유

입력 2019-12-25 08:42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25일 공직선거법 개정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8번째 주자로 나서며 6411초 동안 발언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는 고(故)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선거 당시 수락 연설에서 언급한 ‘6411 버스’를 의미하는 숫자다.

25일 0시 14분 단상에 오른 이 의원은 6411번 버스 연설문을 인용하며 “우리가 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지 연설문에 고스란히 담긴 노회찬 정신 속에 있다”고 했다. 노 전 의원은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6411번 버스를 언급했다.

이 연설에서 노 의원은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하고 4시 5분에 출발하는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 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명 한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진다”며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탄다.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다”라고 설명했다.

“이 버스에 타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한 노 의원은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돼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한 한 노 의원은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냥 아주머니다. 그냥 청소 미화원일 뿐이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이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했다.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고 한 노 의원은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한다”고 했다. “부족한 사람을 선출해주신 것에 대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락하고자 한다”고 한 노 의원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투명인간의 당으로 이 진보정의당을 거듭 세우는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넣겠다”고 했었다.

이 의원은 이런 노 의원의 연설을 되새기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패스트트랙은 자유한국당의 자업자득”이라고 한 이 의원은 “이 상황에서 가장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황 대표를 찾아가라”고 촉구했다.

“이 사태의 책임은 첫 번째, 황 대표에게 있다. 황 대표는 오히려 패스트트랙법안들이 빨리 처리되길 바랄 것이다. ‘봐라. 저들이 우리를 이렇게 핍박한다’며 피해자 흉내를 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총선을 어떻게 돌파할까?’ 생각만 하는 게 황교안 대표”라고 비판한 이 의원은 “여기서 국회의장, 민주당, 정의당 탓하면 문제가 해결되나”고 꼬집었다.

“황 대표는 원외에 있어서(장외에서)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제는 협상의 시간이다”라고 한 이 의원은 “원내대표에게 위임하고 국민에게 제대로 된 협상의 정치를 보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라. 그게 순서다”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두 번째 책임은 검찰에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장석까지 올라가고 국회가 이렇게 무법천지가 됐다”고 한 이 의원은 “그런데 왜 한국당 의원들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층으로 만들어 놓았나. 검찰은 내일이라도 당장 국회 선진화법을 짓밟을 한국당의 범죄에 대해 철저히 수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