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등록된 초등학교 남자 배구선수는 509명이다.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숫자는 줄어든다. 중학생 390명, 고등학생 319명이 배구를 한다. 대학 선수는 206명. 시작할 때의 절반이 안 된다.
프로 선수가 되는 건 더 바늘구멍이다. 올해 프로배구 V-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한 43명 중 최종 선정된 건 30명이다. 수련선수 8명이 포함된 숫자다. 매년 비슷한 규모가 유지됨을 고려할 때,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프로에서 기회를 얻는 선수는 고작 4.52%다.
주전 도약은 또 다른 문제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하루하루 성적이 압박이 되고, 조그만 일탈엔 자세 지적이 뒤따른다. 그 속에서 선수들은 합숙을 하고 훈련을 한다. 막 프로에 발 디딘 어린 선수들에겐 가혹한 환경이다.
한국전력 레프트 김인혁(24)은 그런 치열함 속에서 데뷔 2년차였던 지난해 성장통을 겪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며 팀을 이탈했을 정도로 배구인생의 고비였다. 24일 경기 의왕의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눈 뜨면 운동만 하는 반복된 일상을 견디는 게 선수가 힘든 점”이라며 “운동이 힘들었고 일반인들이 하는 평범한 게 해보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코트를 떠난 김인혁은 연락을 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창시절부터 운동으로 점철돼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했을 터다. 그렇게 약 한 달.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다시 익숙한 배구장이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 등 팀원들의 조언과 배려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그이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은 건 본인이다.
“힘든 고비는 계속 와요. 그걸 어떻게든 참고 넘겨야 순탄해질 수 있다는 걸 작년 일을 겪으며 느꼈어요. 생각을 바꾸게 됐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방황을 극복한 김인혁은 성장했다. 올 시즌 V-리그 수비 6위(세트당 3.698개)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팀 내 공격점유율 2위(16.06%)로 베테랑 가빈 슈미트(49.09%)가 이끄는 공격을 거든다. 리그 2위의 서브(세트당 0.508개)는 김인혁의 강점이다. 지난달 8일 현대캐피탈전에선 서브 득점 10개로 한국선수 한 경기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장병철 감독은 “인혁이가 마음이 여린 편이라 자신감을 심어주려 했다. 지난해 많이 느꼈는지 훈련량도 많고 지도하는 대로 따라오려 노력한다”며 “수비 안정감이 있고 공격 스피드와 파워를 갖춰 더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제자를 평가했다.
그런 장 감독의 ‘자율배구’는 김인혁 등 어린 선수들에 숨 쉴 틈을 부여했다. 장 감독은 위계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합숙과 아침 식사 참석 등을 자율로 돌렸다. 김인혁은 “감독님이 선수들을 믿고 맡겨주셔서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인혁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성격이다. 못한 점만 생각하며 자책하는 게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감정 기복이 플레이로 연결되기도 한다. 22일 부상을 입은 가빈이 빠질 우리카드와의 2연전에선 이 점을 극복해야 한다. 그는 “(가빈이 없어) 책임감이 든다”며 “팀에서 할 역할이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꾸준한 경기력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해야 하는 일’이었던 배구는 어느덧 김인혁에게 ‘하고 싶은 일’이 됐다. 그는 “팀 성적(6위)도 좋지 않고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배구의 소중함을 알게 돼 의지가 생겼다”며 “작년에 수석코치셨던 감독님께 많이 죄송했는데 (성적 부진으로) 웃음을 잃은 감독님께 웃음을 꼭 되찾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배구인생의 목표를 묻자 김인혁은 밝은 표정으로 주저 없이 답했다. “등번호가 9번이예요. 9번 하면 생각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의왕=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