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도 졸고, 의원도 졸고… 필리버스터는 18시간째 진행 중

입력 2019-12-24 16:02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 의원이 번갈아 가면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는 촌극이 국회에서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반대 토론을 신청한 자유한국당에 맞서 적극적인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며 ‘맞불용 무제한 찬성 토론’을 신청한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여야 의원들은 상대 당 의원들과 말싸움을 하거나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난하는 데 상당 시간을 썼다.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토론에서 사탕을 먹으며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필리버스터 첫 토론자로 나선 주호영 한국당 의원은 지난 23일 저녁 민주당과 문희상 의장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 주 의원은 “한 10년 권력을 놓았다가 잡으니까 온갖 게 다 전리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그는 “공수처법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180일 채우지 못하고 57일 부족한 채로 특위 없어졌으면 그 절차가 무효다”라며 “선행 절차 요건 못 갖추면 후행은 무효라는 것 행정학 교과서에 다 나오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의장이 역사의 죄인이 되는 일을 몇 차례나 한 것”이라고 했다.

주 의원은 “민주당도 필리버스터 신청을 했는데 부끄러운 일이다. 시간을 소진하고자 그러는 건데 찬성한 측이 필리버스터를 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일갈했다. 주 의원은 4시간 동안 토론을 하고 24일 오전 1시49분에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는 다음 토론자인 김종민 의원이 시청률이 낮은 새벽 때에 토론하게 하고자 필리버스터를 중단했다고 페이스북에 남겼다.

화장실 문제로도 ‘웃픈’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 의원은 화장실을 가지 않고 오랜 시간 버티기 위해서 기저귀를 차고 필리버스터를 했다고 알려졌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과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의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권 의원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같은 당 의원은 “권 의원 물 조금만 마셔”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하고 있다. 뉴시스

문희상 의장과 주승용 부의장이 밤새 번갈아 가면서 사회를 보며 조는 모습도 보였다. 권 의원은 졸고 있는 문 의장을 향해 “얘기 잘 듣고 졸지 말고 잘 있으세요”라며 “나잇값을 하나 자릿값을 하나”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다.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졸지 말아라” “똑바로 들으라”라는 말들이 터져나왔다.

두 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김 의원은 4+1 협의체의 정당성과 선거법 개정안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회에서 유일한 권력은 과반수다. 여야 교섭단체 합의는 국회 운영을 원활하게 하려는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지금 기득권도 아니고 과반수도 아니다”라며 “그 알량한 TK(대구·경북)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4시간 32분 동안 토론을 하고 오전 6시22분에 단상에서 내려왔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세 번째로 나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하며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김 의원 다음 주자로는 권 의원이 나섰다. 권 의원은 문희상 의장을 비난하는 것을 막는 것에 대해 “우리가 뽑은 대통령 비판을 못 하나”라며 “의장을 비판하는 게 국회 권위를 상하게 하는 것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1+4 협의체를 ‘장물아비’와 ‘하이에나’로 낮춰 부르자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만 마음대로 하고 이게 말하는 태도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싸우는 풍경도 연출됐다.

권 의원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맞선 ‘비례한국당’ 전략에 대해 “민주당은 정의당과 이미 야합하지 않았나. 허점 있는 것 만들어놓고 공격해봐야 안 먹힌다”며 “지금이라도 비례민주당을 만들든지 아니면 선거법을 폐기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례성이 민주주의 기본이 아니다. 비례성 강화가 선거를 결정하는 최고의 기준인 것처럼 말하지 말라”며 “비례대표제 원리로 하면 대통령 임기도 쪼개야 한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4시간 55분을 채우고 오전 11시18분에 내려왔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