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로 동양종건 전 회장 해외투자금 횡령 유죄확정 ‘파장’

입력 2019-12-24 15:25

해외에 진출한 경북 포항의 한 건설사가 현지 투자금을 국내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를 횡령으로 규정한 판결이 나와 앞으로 해외 진출 기업들의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양종합건설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특정경제법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배성로 전 동양종합건설 회장의 상고심에서 검찰이 기소한 9개 혐의 가운데 횡령에 대해서만 유죄를, 나머지 8개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동양종건이 인도네시아에서 공사를 수주하면서 현지에 설립한 동양인도네시아에 투자한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계약 미비 등 절차상 문제를 횡령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한시적으로 설립된 동양인도네시아는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로 실제 공사 수행을 위해 인력과 물자, 기술 등을 제공한 동양종건이 투입 비용을 회수해야 하지만 특수관계 간의 송금은 현지 당국의 세무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국내 계열사를 통해 기술용역비 명목으로 회수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또 동양인도네시아에 실제 투입된 인건비를 명목대로 회수할 경우, 한국인 취업비자 1명 당 자국민 10명을 고용토록 한 인도네시아 고용관련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비용 절감과 절세 차원에서 기술용역 계약을 했던 것.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현지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정 부분을 국내로 환수하라고 지시했고, 이는 단순히 동양종합건설이 투입한 인건비를 송금하라고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원심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로 판단했다.

동양종건 측은 “투자금 회수방안을 위해 코트라와 해외건설협회 상담을 받았고, 가장 합법적인 방안이 인도네시아 당국에 20% 세금을 내는 기술용역계약이었다”며 “개인적 이익을 위해 해외자금을 은닉 또는 송금하는 일반적인 횡령 사례와는 명백히 구분된다”고 밝혔다.

국내에 진출한 많은 외국 기업들이 기술용역비, 경영자문료 등으로 투자금을 회수해가고 있는데도 이를 횡령이나 배임으로 처벌한 적이 없어 이번 유죄판결은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또 “내국인이 외국에서 한 행위가 국내법에 위반되는 것이더라도 그 행위가 현지의 법령이나 사회규범에 의해 당연히 허용되는 행위이고, 국내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서울고등법원 2017노2802)에도 정면 배치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해외에 진출한 중소 건설사 대부분이 기술용역비 등 명목으로 해외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종건 사례가 유죄로 확정됨에 따라 향후 해외진출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동양종건 관계자는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이익 보호를 위해 고용이나 세금, 투자 등에 지나친 규제를 적용한다”면서 “검찰의 기소내용으로 따지면 피해를 본 동양인도네시아의 현지 정부가 문제 삼지 않는데, 투자금 회수의 종착지인 한국 정부가 문제 삼는 아이러니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포항=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